혈압이 올라간 것 같고, 두통도 있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 약을 먹다 보니 계속 약에 의존하게 되면 어쩌나 겁이 나서 결국 의사와 상담 후 푸로작 투약을 중단했다. 장기간 복용한 것은 아니라 서서히 줄이지 않고 한 번에 중단했는데 우려했던 중단 부작용은 별로 나타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푸로작을 먹고 처음 한 주 정도는 식욕도 안정되고(폭식이 줄어들고 배고픔을 현저하게 덜 느낌), 기분의 오르내림 폭도 한결 나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약을 복용하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자신감과 자존감도 마구 샘솟아서 조증이 온 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기대효과가 높아서였는지 그 후로 계속 초반의 효과는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줄어들었다. 푸로작을 한 알에서 두 알로 늘려서 복용하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오르락내르락 하며 힘든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고 실질적 허기가 아니라 감정적인 허기도 자주 느끼게 되었다. 무기력과 우울도 스멀스멀 다시 기어올라 약을 먹기 전과 딱히 달라진 점도 없어지게 되었다.
거기에 약을 복용하고 있으니 약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가중되어버렸다. 수면장애 때문에 처방받은 졸피뎀도 내 불안을 부추겼다. 한꺼번에 다 먹으면 치명적인 약이라 의사가 그렇게 많이 처방해 주지는 않았지만 이래저래 긴 시간 동안 모으면 나중에 모아서 먹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꿈틀거렸다. 아주 예전이긴 하지만 오빠가 받아와서 먹지 않고 계속 쌓아만 뒀던 정신과 약을 열 봉지가 넘도록 다 뜯어서 먹고는 자다가 구토를 해서 겨우 살아난 이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투약을 중단하고 나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음은 물론, 병원에서 혈압을 다시 측정해보니 조금이나마 혈압이 내려가기도 했다. 한 2주일 정도 뒤에 한 번 측정하고 다시 그로부터 1주일 후에 측정했는데 둘 다 이전보다 낮았다. 물론 혈압의 문제는 단순히 푸로작이 주된 원인이다 아니다를 판단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확실히 투약 중단 후 측정했을 때 두 번 다 낮은 결과가 나왔으니 일단 투약 중단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약에 의존할까 봐 걱정하고 그 걱정이 가뜩이나 불안을 떠안고 사는 나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는 일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좋은 점이고, 그 후로 여전히 정서적인 불안과 낮아진 자존감으로 인한 무력과 우울의 증상은 사실 계속 호전되었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했다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점이다.
내가 하고픈 거 다 해보고(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그리고 조용히 마지막을 선택하자는 생각을 마음속에서 떨치기 힘들었다. 이래도 저래도 도무지 하루하루가 그저 버티고 견디는 고문과도 같다면, 그렇지 않은 하루하루를 힘껏 모아서 만들고, 그런 날들을 며칠만이라도 살아보고 그리고 이제 그만! 다 그만두자는 그런 생각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변함없이 일상을 꾸리긴 하지만 말이다.
시일이 한참 흐르고 나서 투약 중단 전과 중단 후를 비교해보니 아무래도 내 경우에는 투약을 중단하길 잘했다는 결론이다. 각자의 증상에 맞게 약을 처방받고 또 경과를 보면서 약을 늘리거나 줄이거나 먹지 않게 되는 일반적인 치료 과정 중 하나를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다른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돌아보니 그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고 오히려 심리적으로 약에 의존하려고 했던 부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매일 약을 삼키지 않는다. 그 대신 우울과 불안과 슬픔을 삼키고 있다. 딱히 어느 쪽이 더 좋고 싫은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