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절망

by 보라구름

내 삶 어딘가에서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절망스럽게

한껏 절망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머리를 무릎에 푹 파묻고 검은 그림자를 짙게 깔고서

절망을 웅얼거리고 나를 기다릴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절망은 그 누구보다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머리를 똑바로 세워 먼 곳을 응시하며

어떤 소음도 내지 않고 굳게 입을 닫은 채

차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만난 순간

절망은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떠한 악의도, 조소도, 경멸도 없고

지나치게 깍듯하거나, 형식적이거나 하지도 않은

오로지 인사 그 자체만을 위한 순수한 인사를 건넸다


절망의 인사를 애써 무시하고 싶었지만

순수한 인사 앞에서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절망을 만나버렸다

안녕,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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