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악몽

악몽의 패턴

by 보라구름


금요일 밤, 근래 들어 가장 끔찍한 악몽을 꾸며 한참 시달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제대로 잠을 설친 탓에 토요일 하루의 리듬이 무참하게 깨졌다. 선잠 같은 낮잠이라도 자보겠다고 몇 시간을 침대에서 누워 보내고 개운치 않은 상태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밤이었다.


한동안 내 악몽의 패턴은 주로 물과 계단에 대한 공포로 드러났다. 밑에는 깊은 물이 흐르고 난간이 없는 대교를 혼자 비틀거리면서 아슬아슬하게 건너야 하는 꿈, 누군가에게 쫓기며 계단을 한 발에 서너 칸씩 뛰어 내려가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 물에 빠졌다가 죽을 뻔 한 이후로 물 공포증이 생겼고, 계단에서 굴러 정강이 뼈를 다친 후에 계단 공포증이 생긴 탓이다. 경험에 의한 공포는 각인이 되어 오래도록 남는 것 같다.


주변에서도 이렇게 악몽 유형이 정해져 있어 그런 꿈을 돌아가며 꾼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남자들의 경우 제대한 지 십 년이 지났어도 군대 관련 꿈을 꾼다고도 했다. 또는 수능 시험을 보러 갔는데 아는 문제가 단 하나도 없어서 당황하는 꿈을 꾼다는 이도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내 공포의 유형에 하나 더 추가된 악몽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악몽을 꾸고 일어나면 물이나, 계단 꿈을 꾸고 난 뒤의 기분과는 상당히 다른 기분이 든다. 진저리가 쳐지거나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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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의 악몽은 새로 추가된 악몽에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뒤섞인 악몽이었다. 이혼한 지 십 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꿈에 시모가 나온다. 일상에서 무슨 자극을 받은 것도 없는데 무의식에서 건드려진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시기에는 내 악몽의 패턴에서 꽤 자주 등장해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아직도 내 안에서는 당시의 일이 끝난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가 느꼈던 지독한 절망감과 외로움, 끔찍한 감정과 두려움들이 내 무의식의 바다에서 여전히 표류 중인 것 같다. 현실에서의 실제 접점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실화된 공포라고 보긴 어렵지만, 태풍 후의 잔해 같은 상처와 감정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시모가 등장하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면 자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 언제 적 일이냐, 벗어난 지 한참 된 일인데 왜 이따위 꿈까지 꾸면서 시달리냐'라고 스스로에게 한심하다고 손가락질하며 괴롭히는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왜 아직도 이런 꿈을 꾸는지 스스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꿈에서 다시 재현하며 고통받았던 나 자신을 토닥여준다.


괜찮아, 꿈일 뿐이야. 그저 악몽일 뿐이야.


너무도 끔찍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현실을 부정하며 제발 이게 꿈이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듯, 이젠 그저 꿈일 뿐이라고 위로한다.


다만, 이 악몽의 패턴이 너무 자주 나를 집어삼키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염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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