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을 쓴 작가는 금지된 결투를 벌인 죄로 42일 가택연금형을 받았다. 난 금지된 결투 같은 걸 벌인 적도 없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올 들어 1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2/3 정도의 기간을 내 방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외출도 최소한으로 하며 보내고 있으니 가택연금과 크게 다르진 않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공간인 내 방은 17살 때부터 썼던 방이다. 30년이 좀 못 되는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내가 이 방에 머물 것이라고는 당시의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현실이 되어 있다. 내 방 30년! 30년 동안 같은 방에서 지냈다는 건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2년, 대학시절 1년. 총 3년 동안 이 방을 쓰다가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고, 미성년이던 내가 성년을 넘어 중년이 되어 다시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어린 시절 내가 썼던 방이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데는 전세가 남아나지 않고 죄다 반전세(어떻게든 월세를 붙인)로 바뀌는 주택시장의 영향이 컸다. 게다가 짧게는 4년 길면 6년 정도 주기로 이사를 다니는 것도 너무 힘들기도 해서, 집주인이 아버지인 현재의 집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를 오게 된 것.
이사 오면서 집 내부를 크게 손봤다. 현관에 중문을 설치하고, 이중창으로 새시도 교체했다. 욕실 창문은 폐쇄하고 배기구를 새로 달았고 욕조를 놨다. 천정은 모두 흰색으로, 벽지는 옅은 핑크색으로 바꿨다. 조명도 LED로 바꾸고, 형광등 색이 싫어 주광색으로 바꿨다.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3년을 보냈던 기억은 이미 다른 세입자들이 오래 살면서 덧입혀져 옅어졌고, 그 위에 내가 선택한 것들로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집이 오래되다 보니 고쳐야만 하는 곳도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내 방에 머무르는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더 늘어났다. 평소대로라면 평일에는 한 시간 미만, 주말에도 두 시간 남짓 사용했을 내 방이, 이제는 하루에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방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방문이 없어도 되는 생활이라 모든 방문을 다 떼었다가 최근에 내 방에서 오래 지내게 되면서 다시 내 방만 방문을 다시 달았다. 방문 색깔은 흰색으로 칠해서 조금이나마 덜 답답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온라인 미팅을 종종 하는데 아무래도 소음 차단이 필요해서 방문을 안 달 수는 없었다.
회사 업무용 맥북을 책상 가운데 놓고 원래 책상 위에 있던 아이맥은 다른 방으로 보냈다. 출퇴근 시간이 사라지고 방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책 주문량도 늘어났다. 여유 있게 빈 공간이 남아 있던 책꽂이는 어느새 꽉 차서 방의 두 개 면을 뺑 둘러서 빼곡하게 책의 성벽을 쌓은 셈이 되었다. 그러고도 책 정리가 덜 되어 책상 위에 놓을 용도로 책꽂이를 두 개 주문해서 놓고 어지럽게 책상 위에 두었던 책을 가지런히 꽂아두었다.
책상 옆 책꽂이에 고정된, 한때 인터넷 방송을 하던 시절에 쓰던 마이크 스탠드는 지금 벽 쪽으로 밀려나서 최대한 책상에서 멀리 떨어진 채 먼지만 쌓여간다. 치워둘까 싶다가도 다시 방송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은 남아 있어서 그대로 두느라, 방송에 대한 미련을 등에 업고 마이크는 방치 중이다.
ㄱ자로 배치한 책상과 작업대에는 노트북(거치대 포함), 책꽂이 3개, 프린터 겸 복사기가 놓여 있고, 필기구 수집이 취미라 필기구가 가뜩한 펜꽂이 통 다섯 개가 놓여 있다. 여름을 나는 데 필수품인 벽걸이형 에어컨도 이사 오면서 들고 와서 설치해두었는데 올여름 재택근무하는데 아주 요긴하게 잘 썼다.
책상과 작업대 바로 옆에는 천정까지 단단히 고정해 둔 5층 원목 캣타워가 있다.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사는 데 있어 필수품이 아닐 수 없다. 정작 한 마리만 캣타워를 주로 쓰고 있지만, 그래도 맨 꼭대기층에 올라가 편하게 뒹굴며 낮잠을 자는 녀석을 볼 때면 펜트하우스라도 차지한 듯 여유로워 보인다.
17살부터 20살까지의 내 방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통기타를 처음 배워 뚱땅 거리며 노래까지 하고 연습했던 기억, 베란다 창문이 방 창문이라 엄마가 가끔 집안일 때문에 베란다를 드나들면 신경 쓰여서 괜히 혼자 꽁했던 기억 정도가 떠오른다. 그 시절의 나는 주로 학교, 독서실, 학원,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더욱더 청춘의 열정과 자유를 만끽하느라 방에 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사 온지도 어느새 2년이 넘었다. 이사 와서 몇 달 안 되던 시기에는 이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살게 된 것이 신기했는데 이제는 별로 그런 자각이 없다. 아주 가끔, 아 원래 내가 여기 살았었지 싶을 정도? 그만큼 이제 익숙해진 정말 지금의 내 방이 된 게 아닐까 싶다.
30년 가까이 한 집에서 한 방을 쓴 게 아니지만, 정든 공간이라 지금까지 지내왔던 많은 내 방들 중에 각별하게 애착을 갖는 방인 건 틀림없다. 앞으로 한 10년 뒤에는 어디에서 내 방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