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와 지금

달라졌을까?

by 보라구름

가수 장재인이 sns에서 10대 시절 겪었던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재 꾸준한 치료와 약물 복용으로 심적 뿌리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은 가끔 들어가 보곤 하는 어느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때는 쉬쉬하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졌을까요?라고 묻던 장재인의 글에 그 글을 읽던 사람들은 뭐라고 답했을까? 똑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때와 지금은 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 달라졌고 정신건강학과(명칭도 달라짐) 및 치료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건 사실이다.


나 역시 17살에 겪었던 그 끔찍한 일이 가끔은 덜컥 나를 집어삼킬 때가 있다. 그 범죄자는 20대 후반, 3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고 불화한 집안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의 나는 부모님과의 다툼으로 새벽에 집을 나와 동네를 걷고 있었다. 한겨울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갑자기 나온 내가 갈 데도 없어서 그냥 분을 삭이며 걷고 또 걸었는데 그런 나는 범죄의 타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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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나는 그 일로 인해 수치심과 고통 속에 스스로를 학대하며 보내왔는지. 그 후로 몇 년을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보는 게 괴로워서 절망했고 세수할 때조차 거울을 보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십수 년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에게도 터놓고 말하지 못했다. 친구나 가족, 또는 선생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건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 안에서는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사람의 생김새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건 망각으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노력의 일환일지도 모르지만 이미지 정도는 떠오른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 이미지와 흡사한 남성을 길에서 만나면 스스로도 놀라 머리칼이 쭈뼛 곤두설 정도의 증오심과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하는 것을 느낀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몸이 떨리는 상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정도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고 몇 년이 지났음에도, 많은 의사를 거쳤음에도, 오로지 지금의 의사 단 한 사람에게만 17살의 끔찍한 일에 대해 말했다. 그것도 상담이 한참 진행되고 1년 은 되었을 무렵에야.


아직도 성폭력 관련 사건의 처벌 수준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가볍다. 마트에서 물건 훔친 형량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인데,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판사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아직도 한 70~80년대 정도에 머문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나는 그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조금씩은 놓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안간힘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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