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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Nov 17. 2022

환승 이직

시간의 가치를 짚어 보는 일 

그간 이직을 몇 차례 하면서 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갈 곳을 정해두고 했었다. 그 두 번도 프리랜서로 잠시 지낼 것을 계획해둔 것이라 다른 회사로 옮기지만 않았을 뿐 일을 구해놓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불안의 강도가 꽤 높은 편인 나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랬던 나지만 그 두 번 중 한 번은 일감을 미리 받아두지 않고 일단 유럽여행 3주 다녀와서 생각하지 뭐 했다가 정말 다녀와서부터 멘붕의 연속이었던 적이 있었으니 그게 유일한 한 번의 계획 없는 퇴사 이후인 것 같다. ENTJ 답다. 


잠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시간 관리가 정말 힘들었다. 혼자 밥을 먹는 것과 식사 시간 지키는 것은 물론 일을 받고 마감에 맞춰 진행하고 우선순위를 관리하는 것이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집 근처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사무실을 구해놓고 한 달에 두어 번 나가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이 지겹고 불치병인 월요병을 그리 오래 앓으면서도 정해진 타임 테이블 안에서 움직이며 지내온 세월이 길어진 만큼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잘 누리는 일은 어색하기만 했다. 


세상에, 출퇴근은 물론 메신저나 메일에서 해방되어 몇 주, 한 달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확실히 그랬다. 이번 환승 이직에서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적 자유가 생겼고 정말 엄청난 자유가 느껴지고 해방감이 나를 감쌀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건 단계적이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여기에서 저기로 점핑하지는 않았다. 볼 것도 없는 회사 메일함과 메신저를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열흘 정도가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 만큼 불편했지만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뀔 것이 아니었다. 권한이 삭제되어 더 이상 볼 수도 없게 된 다음에서야 확인을 멈췄다.  


평일에 해보고 싶었던 것 - 전시회 가기, 국내/해외여행 가기, 쇼핑 하기, 밤새워 ott에서 꽂힌 시리즈 몰아보기, 병원이나 관공서 볼일 보기, 한적한 타임에 필라테스 수업받기,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기


이 모든 것을 다 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만 4박 5일 여행, 강원도 고성 2박 3일 여행, 병원 두 군데 진료, 합스부르크 전시 관람, 코스트코 장 보러 가기, <나는 솔로> 한 기수 몰아 보기, 개명하고 나서 구청, 주민센터 가기 등.. 이렇게 편하게 자유로이 일정을 잡고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었다. 


보통의 직장인에게는 이 모든 것은 주말에 몰아서 하거나, 아니면 휴가라도 내야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새삼, 직장인의 급여는 자신의 시간(순수 노동시간+출퇴근 이동 및 준비 시간)이 포함된 교환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시간을 월화수목금 5일 동안 꼬박 내어주는 조건.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떠올려보니 시간의 가치, 활용에 대해 나이가 더 들어갈수록 더 값어치 있게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분 1초도 허투루 써선 안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스스로에게 값어치 있게 쓰는지 체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경제적 자유를 언급하는 여러 글에서도 결국 시간의 자유를 얻었다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된다. 돈을 버느라 하루의 절반 정도를 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게 언제일지 오긴 올진 모를 일이지만 혹시라도 미래의 어느 즈음에 나에게 시간의 자유가 올 수 있게 만든다면 그때 나는 그 자유를 어떻게 누릴까? 


그걸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자유를 온전히 누릴 줄 아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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