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들에 대하여
점심을 밥 버거로 간단히 해결했으니 저녁은 뭔가 식사다운 식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는 부족했고, 이럴 때는 빨리 음식이 나오는 중국집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니 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유명한 수제비집이 있던 자리였다. 신촌 현대백화점 뒤 쪽에 자리한, 초라하고 낡은 건물의 식당. 그런데 그 자리에 수제비집 대신 손짜장면집이 들어섰다. 일단, 밥을 해결하고자 발걸음을 분주히 옮겼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짜장면 한 그릇이 탁자에 등장했다. 3,500원을 선불로 내고 자리에 앉아 가방이며 카메라를 정리하던 와중이었으니 정말 빨리 나온 것이다.
몇 장 사진을 찍고 쓱쓱 비벼 후루룩~ 맛을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짜면서, 적당히 쫄깃한데 이 삼박자가 한데 어우러져 근사한 하모니를 내고 있었다. 무려 3,500원에 말이다.
맛있게 면발을 씹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조심스레 다가오셨다. 사진은 왜 찍는 건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잠시 이어졌다. 짜장면 싼 집으로 소개하려는 거냐며 웃으신다. 그저 싼 집으로 소개할 맛이 아니라는 건 깨끗하게 비운 빈 그릇으로 답해 드렸다. 주인아저씨는 11월에 굴짬뽕 메뉴가 생긴다는 홍보도 잊지 않으셨다. 내년 3월에는 재개발로 이 건물이 없어진다고도 하셨다.
재.개.발. 그래, 어쩌면 맞은편 현대백화점과 길 하나를 누고 나란히 있기에 이 건물은 너무 초라하고 낡고, 낮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유명한 맛집인 수제비집도 바로 대각선 맞은편 언덕으로 자리를 옮긴 거였다. 그럼 이 짜장면 집은 어떻게 되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싸고, 맛있는 짜장면은 이런 허름한 가게가 아니면 맛보기 힘들 텐데. 시설 좋고, 실내가 넓은, 인테리어가 잘 된 식당에서는 절대 이 가격으로 음식을 팔 수 없겠지. 내년 3월이 오기 전에 나는 이 곳에 몇 번이나 더 오게 될까? 적어도 굴짬뽕을 먹으러는 와보리라 생각하며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