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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Oct 03. 2023

공포의 텅 빈 화면

커서만 깜빡이는 날 

한참을 흰 화면에 커서가 깜빡이는 것만 바라본다. 아침이면 항상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게 하루 일과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런 글도 쓸 수가 없는 상태다. 


어제 거의 만보 가량 걸었고, 평소보다 꽤 걸었으니 이만하면 피곤해서 약 없이 잠을 잘 잘 거라고 생각한 게 문제였다. 결국 자다 깨다 불안한 상태로 뒤척이다가 새벽 5시에 안정제 한 알을 먹고도 한 시간 반 정도 뒤에야 가까스로 2시간 정도 더 잤다. 그나마도 온갖 꿈에 시달리며 긴장한 채 아침을 맞았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글을 쓰고, 다른 작가님들 글을 보고, 이따금이지만 댓글을 주고받으며 위로를 받았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는 꽤 되었지만 도무지 꾸준히 글을 쓸 수 없어서 매번 글을 올렸다 말았다만 하던 브런치에 이렇게 꾸준히 매일 글을 올리게 된 게 새삼 기특하면서도 아무런 글도 써지지 않는 공포의 흰 화면을 마주하게 될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냥 그런 글, 임팩트가 없고,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글.. 을 쓰게 되면 어쩌나. 이미 그런 글만 써댄 건 아닌가? 써놓고 저장만 누르고 도무지 발행을 누를 수 없을 때가 오면 어쩌나. 걱정왕답게 그런 걱정은 미리 다 해뒀다. 그리고 그때는 오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늦게 온 것일지도 모른다. 



15일 동안 매일 빼먹지 않고 글을 써서 올렸다. 다른 인기 작가들의 글에 비하면 좋아요 숫자나 댓글 숫자는 비할바가 아니지만 용기 내어 매일 글을 쓴 나에게는 브런치의 좋아요, 댓글 알림이 힘찬 응원이고 기쁨이었다.(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비장한 마음으로 절필 선언하려는 대작가 같기도;)


요만큼 쓰고 있는데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당혹스럽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과 직면하는 고통이 생각보다 크다. 좋아서 하는 일, 돈 한 푼 안 생겨도 매일 기꺼이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던 그 시간마저 부담으로 다가오고,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느껴지게 만드는 나 자신이 답답할 따름이다. 


15번의 글을 썼는데도 아직, 이 매거진을 만들면서 올리고 싶었던 속내 이야기는 겨우 첫걸음만 떼었다. 변죽만 올리는 글로 보름을 보내다니. 결국 아침부터 펑펑 울고 말았다. 한참 눈물 콧물 흘리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브런치 글의 좋아요 알림이다. 알림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그쳐 있다.


아이고, 이렇게 인정욕구가 강한 나란 사람. 글이 안 써지는 날에는 넋두리라도 하고, 그 마저도 안되면 쉬어 가면 어떤가. 글이 왜 이모양이냐, 글은 왜 매일 안 쓰냐고 나에게 공개적으로 질타할 그 누구는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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