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도 치유가 되나요
휴직 후 한 달이 넘어 두 달을 향해 가도록 체력과 심적 여유가 없어서 여행을 다녀오려던 계획은 계속 미뤄졌다. 오기 전부터 내 상태는 문제였다.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 몰려서 어쩔 줄 몰라하며 약으로 간신히 버텼다. 이번에는 회사랑은 무관한 다른 문제였고, 돈 문제가 엮여 있어 더 괴로운 상황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숨 쉴만하면 돌을 던지는 인생인가 싶다가도 숨 쉴만할 때 던져서 다행이다 싶고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분노가 치밀다가 체념하다가의 반복인 것 같다.
그러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예약했다. 속초에서 조금 더 올라간 곳 고성으로.
네 시간 겨우 자고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다섯 시 반에 해가 지고 나면 사방이 다 캄캄해지는 곳. 배달음식은 거의 시킬 수 없거나 시켜볼래도 어마어마한 배달팁이 붙는 시골.
잠을 못 자고 피곤한 상태였지만 수면제를 먹고도 쉽게 잘 수 없었다. 심지어 약을 안 먹으려고 내적 저항까지 생겼지만 참고 먹었다. 피곤하고, 여행까지 왔으니 약 안 먹어도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약을 먹고도 한 시간은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고, 자다가도 한 번 깼다. 약에 대한 저항감이 아직도 이렇게 있다는 게 괴롭지만, 일단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 일어나자마자 아침약을 먹었다.
플루옥세틴, 로라제팜.. 약들아, 내 하루를 부탁해.
아침에 피곤을 주렁주렁 매달고 일어나긴 했지만 7시간 이상은 잘 수 있었고, 암막 커튼을 열고 창문도 열어두니 눈앞에 시원한 바다와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려와 바라보고 싶은 만큼 잠시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이 조금씩 물러가고 상쾌함 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서서히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위협적인 파도소리가 아니라 이렇게 잔잔한 파도소리는 마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자연의 소리 어플에서 찾아서 들었던 그 파도소리 같았다. 천천히, 조용히, 이따금 조금 높이 소리를 내는 고성의 파도는 묘하게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계획을 안 세우는 게 힘든 사람인지라 역시나 오늘 할 일과 움직일 동선도 아침에 다시 점검을 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혼자 여행의 최대 장점은 이런 일정이 어떤 식으로든 변경되어도 무탈하다는 점이다. 순서를 바꿔도 괜찮고, 가려고 했던 곳을 빼도 상관없다. 그냥 내가 알아서 조정하면 그만이다. 2인분을 주문해야만 먹을 수 있는 맛집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점도 많은 나 홀로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