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같은 날은 아냐
그랬다. 분명.
매일 뜨는 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해 뜨는 거 본다며 새벽같이 일어나는지, 그 시간에 푹 자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생각하던 나였다. 아침형 인간하고는 거리가 멀다 보니 이른 아침에는 뭘 해도 힘들고 집중도 안 되는 편이라 일출을 보는 건 나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배 타고 나가서 일출을 보고 왔다.
취재할 때 일출 찍으려고 포토그래퍼랑 나가서 세팅하고 위치 선정 하고 오케이 컷 잡을 때는 일이라서 어쩔 수 없이 했다. 자발적으로 일출을 보려고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일출을 봐도 딱히 뭔가 감동이나 그런 것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졸려서 하품만 했었다.
휴직을 하고 보니 매일 무언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사라졌고 루틴은 내가 잡은 루틴과 일상의 일들을 처리하는 게 다라서 상대적으로 무척 자유로워졌다. 그래서일까?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난 것은.
일을 쉬고서야 비로소 업무 타임테이블과 각종 미팅 시간, 처리해야 할 마감시간에서 벗어나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무는 자연의 타임테이블을 인지할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일출 시간과 일몰 시간을 챙겨보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배 위에서 마주한 오늘의 일출
매일이 더 이상 같은 날이 아니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쉴 새 없이 이슈가 생기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정신없이 해결하고 나면 원래 하려고 계획했던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걸 다시 해결하고 있노라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다른 일이 보이고. 끊이지 않는 일의 채찍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등짝이 찢어져도 아픈 줄 모른 채 일에만 매몰된 삶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한숨부터 내쉬거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강제로 카페인 각성을 하지 않아도 된 지 5주 만에 찾아온 변화다. 이제는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즐겁다. 온전히 내 하루, 내 것인 하루라고 생각하니 매일이 다른 날이고 새롭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파도 소리를 BGM으로 하고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며 숙소 안 책상에서 글을 쓰는 지금, 행복으로 가득한 순간이다. 아마 며칠 연차를 내고 휴가로 왔다면 결코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수시로 메일 확인하고 울려대는 업무 메신저를 보느라 휴가 중인 건지, 그냥 밖에 나와서 업무를 보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런 휴가였으니.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건 서울 생활에서라면 좀 어렵다. 해가 지고 나면 주변이 대부분 어둑어둑 해지고, 초저녁만 해도 온통 깜깜한 시골에서 체감하는 게 효과적이다. 오래전 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 하루 일과를 보냈을 텐데, 도시는 언제나 밝다. 귀촌이나 귀농을 할 계획은 없지만,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연의 시간에 맞춘 일과로 보내는 날들을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배를 탔고,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머물며 보내는 시간이 참 좋았던 아침이었다. 지구의 71%가 바다인데, 그 넓은 바다에서 좀 더 머물고 싶었다. 어설프지만 바다낚시 체험도 했다. 잡으려던 삼치는 한 마리도 못 잡았고 미끼만 신나게 헤엄치게 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헤엄치는 미끼를 보며 까르르르 웃었다.
다른 배 선장님이 잡았다고 보여주신 도치. 녀석, 생긴 게 올챙이 같다고 해서 보니 정말 그랬다.
삶을 보는 시야가 아주 조금은 넓어진 느낌이다. 누가 강제한 것은 아니지만 쳇바퀴 돌듯 사는 데 길들여지다 보니 그 너머는 아예 눈을 질끈 감고 안 보려고 애쓴 것 같다. 전혀 해볼 것 같지 않았던 배 타고 일출 보기나 바다낚시 체험 같은 것을 할 수 있으니 이제 다른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안 해본 것, 해보고 싶은 것을 좀 더 한다고 해서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그 자체로 충분히 즐거우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