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성 기분장애
약한 우울증과 약한 조증(경조증)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기분상태의 지속기간이 긴 양극성장애와는 달리 기분상태의 지속기간이 비교적 짧은 것이 특징이다. 정상적인 기분상태가 거의 없다시피 일 수 있다.
그렇다. 이전 포스팅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순환성 기분장애에 대한 설명글이다. 이 설명글을 읽고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멍해졌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대체 어떤 것인지. 자기 전에 피곤해서 스르르 언제 잠드는지도 모르게 잠드는 건 어떤 것인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의 감정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는 건 또 어떤 것인지 내가 좀처럼 알 수 가없었던 이유.
최근에는 이틀, 또는 사흘 정도의 사이클이 아니라 아예 격일로 사이틀이 돌고 있다. 감정의 업다운이 격일제로 찾아오고 오늘은 다운의 날이다. 약을 다 먹고 잤음에도 5시간 만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밀려오는 짜증과 무기력함, 무망감에 질식할 것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더 절망적인 건 이 상태가 아침 약을 먹기 전이 아니라 먹은 후에도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일을 쉬면서 휴식을 즐기면, 상태가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업무 스트레스와 일로 인한 여러 가지 압박에서 나를 놔주면 숨통이 트여서 적어도 일을 할 때보다는 상태가 좋아질 거라고 기대했다. 병원 치료도 더 편하게 받고(주 1회 치료 중), 약을 먹고 졸음이 오거나 피곤하면 내가 원하는 만큼 침대로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당연히 나아질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휴직 후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좋아진 부분도 분명 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무망감(희망이나 가망이 없다는 느낌, 처한 상황 자체에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좌절감에서 오는 감정)에 사로잡혀서 고통스러워한다.
감정이 올라간 상태에서는 무망감은 사라지고 대체로 희망적이거나 낙관적인 사고를 하긴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하루 짜리 안전망이다. 격일제 업무 당직도 아니고 이놈의 감정은 왜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나를 찾아와서 주인행세를 하고 가버리나 싶다.
책을 사랑하는데, 단편 소설 하나 정도 분량 이외에는 잘 읽지 못한다. 내 감정 상태를 판단하는 척도가 읽기의 난이도와 몰입 시간인데 상태가 좋은 날도 독서능력은 딱 저만큼이다. 안 좋은 날은 아예 책을 읽는 게 불가능하다. 그럴 때면 인생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상실한 기분이 든다. 읽을 수 없는데 뭘 쓸 수 있나 하는 자조적인 한숨은 자동반사적으로 나온다.
내일은 다르겠지. 하루짜리 희망이라도 있겠지. 제발 그것만이라도 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