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상담 일정을 하루 앞당겨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을 바라보며 휴직을 하고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도무지 뭐가 나아진 건지 모르겠고, 약도 이렇게 잘 챙겨 먹고 일도 쉬어서 스트레스도 줄였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 건지, 나아지기는 하는 건지, 이렇게 해도 안 나으면 가망이 없는 것이 아닌지 너무 두렵다고 눈물을 흘렸다.
특별히 어떤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감정이 하루 중에도 계속 오락가락하고,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니 더 조바심이 나게 된다고 했다. 위아래로 널뛰는 상태가 아니라 제발 그냥 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의 상태로 살아보고 싶다고.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으로 변하는 것 같고, 감정이 조절되지 않으니 너무 힘들고 괴롭다고 털어놨다.
원래 상담시간에 말이 많은 편이라, 이런 내게 익숙한 선생님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 처방도 바꾸고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중간중간 질문도 했다. 이러다 영영 낫지 않는 거 아니냐며 휴지로 눈물 콧물을 닦는 사이에 선생님의 오늘의 피드백이 전해졌다.
애초에 휴직을 했을 때 이유가 뭐였죠? 감정을 잘 조절하기 위해서 휴직을 했었나요? 당시 너무 힘드셔서 자살 사고와 무력감, 우울감 때문에 일상생활이 안될 만큼 위급한 상황이라서 그 원인 제공 환경에서 멀어지고 힘든 상황을 멈추기 위해서 휴직을 결정하신 거죠.
**님의 강점이자 장점은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낫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죠. 매일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고,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위해 오시고, 오실 때도 항상 정리를 해서 오시면서 약 복용에 대한 피드백도 전달해 주십니다. 그런데 감정이 꼭 조절되어야만 할까요? 물론 너무 감정이 크게 요동쳐서 힘드시지만 의지대로 감정이 컨트롤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노력을 기울이신 만큼 기대한 대로 되지 않으셔서 속상하시겠지만, 차라리 노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셔 보는 것은 어떨까요? 컨트롤하려고 애쓰지 마시고 감정을 그대로 한번 둬보세요.
(뭐시라? 감정이 길길이 날뛰는데 그걸 그냥 두라고요? 상황에 따라 약도 조절하고 매일 꼬박꼬박 약 먹고, 감정변화를 기록하고, 어떻게든 나아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데 노력해 봐야 감정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니 아예 노력을 하지 말라고요? 선생님은 제 입장이 되어서 괴로워본 적이 없으니 그런 말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의사가 되어서 환자에게 나아지려는 노력을 그만두라고 할 수가 있는 건가요?)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에 욱해서 저렇게 속마음을 말로 꺼내려고 했지만 간신히 이성의 줄을 붙들고 말들을 괄호 안에 잘 묶어두었다. 그렇다, 나는 지난 한 달 반동안 열심히 노력한 것의 결과가 현재 상황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응급처치를 했다고 해서 갑자기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응급 처치 후 여러 가지 검사를 거쳐서 적절한 치료를 하고, 상황에 따라 수술 및 입원을 하거나 통원 치료를 하며 경과를 보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몸 건강에 대해서 그러하듯 마음도 마찬가지다. 물에 빠졌을 때 살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니라 힘을 빼고 물 위로 어떻게든 떠오르는 게 방법이기도 하듯이.
휴직을 결정하던 당시의 급박함은 어느새 뒤로 하고 혼자 마음대로 이상적인 치료 목표를 만들어서 평온한 하루하루를 거의 매일 맞이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감정은 출렁이고, 이따금 잠잠하다가도 순식간에 잔 물결이 금방 큰 물결이 되기도 하는 상태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감정은 의지로 조절되는 게 아니라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오늘도 감정은 바닥을 치는구나. 또 무망감에 사로잡히는구나. 미리 잡아둔 일정을 다 취소하고 돈도 날리게 생겼구나. 하루가 망한 것 같구나. 이런 생각들에 괴로워하고 아파하기보다는 그냥 지금 내가 그 정도로 힘들고 안 좋구나. 현재의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