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나의 세계로 끌어올린다
수영을 할 줄 모른다. 어릴 때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경험을 한 뒤로 물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생존 수영이라도 배워보려 노력했지만 허사로 돌아가 여전히 수영은 할 줄 모른 채 살아간다. 물에서 하는 뭔가를 해볼 생각이 없어서 수영을 못 하는 게 불편하지 않아 여전히 배울 생각이 없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바다낚시를 하게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 <도시어부>를 가끔 우연히 보면 '아니. 저런 걸 왜 하는 거야. 대체! 잡아서 길이 재고 어떤 건 다시 놔주고, 저게 뭐람~' 이랬던 사람이 바로 나. 유일하게 바다낚시를 하는데 갖고 있는 이점이 하나 있다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쾌속정을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는 동안 옆 사람이 수없이 구토를 하고 있어도 멀쩡할 정도다. (선실 내에 있어도 파도가 유리창 전체를 덮쳐서 마치 잠수정이라도 탄 것 같은 그런 쾌속정이었다.)
갯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꿸 줄도 모르고 잡은 고기를 뺄 줄도 모르는 완전 생초보의 바다낚시 첫 도전인데 묘하게 설렜다. 얼마 전에 배를 타고 일출을 보러 갔을 때처럼 마냥 설렜다. 그러고 보니 배만 타면 설레는 건가? 떨림과 설렘을 구분하기 애매해서 그 중간쯤의 감정인데 설렘 쪽에 기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배를 타고 한 10여분 나가는 동안에 이리저리 출렁이는 그 느낌도 좋았다. 같이 참여한 8명이 하나둘 씩 낚싯대를 드리우고 입질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아빠를 따라 민물낚시를 갔던 적이 있다. 흔들리는 배 위가 아니라 땅 위에 서서 하는 낚시였다. 물고기를 잡으면 꺄아아악 돌고래 소리를 내서 아빠와 아빠 친구분들에게 물고기를 빼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 잡은 고기를 빼고 새로 미끼를 끼워주면 다시 낚시를 하는 식이었다. 막상 파닥거리는 물고기가 낚싯줄에 딸려오면 어쩔 줄 몰라 소리 지르면서도 뭔가 잡았다는 기쁨에 방방 뛰어댔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제 이제는 바다 위에서 배를 타고 아빠 대신 선장님을 외쳤다.
선장님, 저 또 잡았어요오오~
초심자의 행운이었는지, 미끼만 먹고 도망친 녀석도 없었고 잡았다가 놓친 녀석도 없었다. 꽉 찬 10마리를 잡아서(가자미랑, 다른 생선) 참가자 중 1등을 해버렸다. 처음에 한 마리 잡고 다음에는 두 마리를 잡게 되니 점점 신이 난 상태로 오로지 낚싯대와 나만이 배 위에 있는 것처럼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선장님 말씀으로는 수심 60미터 정도의 바다에 있다고 했다.
내린 낚싯줄의 길이와 수심 몇십 미터 아래를 상상해 보며 지금 팔랑이는 미끼를 어떤 녀석이 건드리고 있을까? 이제 막 물었을까? 지금 올려야 하나? 이런 생각에 몰두하다가 올려보면 아직 미끼만 온전히 달려 있기도 했다. 그럴 땐 미련 없이 다시 줄을 풀어 내리고, 조금 더 기다려보면서 둥실둥실 조금씩 흔들리는 물결이 마치 요람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도 처음 느껴보는 거였다.
지금쯤 올려보면 있을까? 제발 있어줘. 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열심히 릴을 감고 또 감았다. 와, 마지막에 가자미 두 마리를 낚으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가자미 두 마리다!! 선장님이 이제 그만 배를 돌려 돌아가자고 하자 아쉽다고 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는 것. 그렇게 아쉬운 마지막 낚시를 마치고도 흥에 겨워 혼자 배 위에서 춤까지 췄다. 뱃멀미가 심해 고생하신 멤버들에게는 죄송했지만;;
배를 타고 무동력 상태로 한 시간 반 정도를 바다 위에 있어본 적도 처음이었다. 물론 파도가 굉장히 잔잔한 편이어서 조금 일렁이는 정도였기에 내가 아기 요람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만 해도 어제와 달리 파도가 제법 있는데 이런 날 배를 탔다면 요람은 고사하고 초강력판급 후룸라이드 물벼락을 맞았겠지. 아마 그래도 멀미는 안 했을 것 같긴 하다.
배를 타고 돌아와 우리가 잡은 것들로 회를 떠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다른 분들이 잡은 것까지 모두 합치니 양이 꽤 많아서 먹다가 절반 정도는 포장해서 와야 할 만큼 푸짐했다. 저마다 바다낚시 이야기와 멀미 체험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단연코 오늘의 바다낚시를 제대로 즐긴 사람은 나라고 입을 모았다.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고, 생선은 손으로 만지지도 못하면서 바다낚시가 재밌다니? 얼핏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재밌는 것을 어찌하랴. 목장갑을 끼고 미끼를 꿰고, 잡은 생선을 바늘에서 빼내는 것까지 할 수 있게 되면 더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지와 바다, 다른 세상을 조금이나마 경험하는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수영을 못하고, 물놀이도 자연스레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물속에서 하는 뭔가는 생각지도 못했던 내게 물 위에서 하는 무엇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몸을 적시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걸 왜 생각하지 못한 걸까. 그게 바로 배를 타고 낚시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