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특히 가사가 있다면.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언제나 음악을 끼고 살았다. 눈을 뜨면서 출근 준비하는 동안, 출근하는 동안, 일하면서, 이동 중에, 퇴근하면서, 자기 전에, 그 모든 시간에 대체로 음악은 함께였다. 장르도 다양했다. 팝, 가요, 클래식, 힙합, 랩 무엇이든 끌리는 대로 들었다.
그러던 중 내 정서 상태가 불안에 잠식 당해 예민해지고 감정 기복을 주체할 수 없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일하면서 노동요로 음악을 듣다가 한 곡에 꽂혀서 반복해서 듣는 게 주된 패턴인데 그날은 나얼 노래를 듣다 말고 모니터를 보다 눈물이 줄줄 흘러 당황해서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서 한참을 울었다.
아, 나는 이제 일하면서(남들 보는데서) 음악을 들으면 안 되겠구나. 눈물을 멈출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구나. 그 후로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음악을 듣지 않았고, 점점 혼자서도 듣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면 한 곡에 꽂혀 무한반복으로 듣고, 노래방에 가도 여럿이 가는 것도 즐거워 하지만 혼자 가서 한 시간 이상 한 노래를 부르며 녹음해서 듣고 다시 부르면서(연습) 그 노래 안에 스며들어가는 것을 즐겨했던 나로서는 이제 그런 것과 영영 이별이 된 셈이었다.
그런 삶을 몇 년이나 살아왔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 이어왔는데 문득, 이틀 전 로이킴, 박종민의 <봄이 와도>를 들어버렸다. 경연프로그램에서 불렀던 그 노래는 나를 멍하게 만들고 말았다. 세상에...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게 있었다.
내가 가는 길마다
예쁘게 피어있던 꽃들을 보며
참 많이 웃었고, 참 많이 울었지
마치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
그러다 내가 시들어 갈 때면
그 꽃들은 온 데 간데없었고
그저 내게 남아있던 건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줬지만
보지 못했던 너
봄이 와도
설레지 않을 것이고
여름이 와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거야
가을이 오면
무너지지 않고 견뎌왔음에 감사하며
겨울엔 나를 지켜 줬던 그대만을
내 맘에 새길 거야
내가 주는 사랑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기에
그 모진 말들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나는 그렇게 너로 인해 숨을 쉰 거야
이렇게 너는 나의 우주야
지금처럼만 빛나는 거야
더 커다란 기대보다는
그저 함께 있음에 감사하며
잊지 않는 거야
....
https://youtu.be/kT_6iaBB6Vo?si=Kt1yvX5mdOo8Wty-
감사하게도 유튜브에 두 시간 듣기 버전이 올라와 있다.
처음 노래를 들었던 밤 이걸 틀어두고 두 시간 동안 들으며 울고 또 울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인생에서 겪어 나가는 하나의 시절로 이해할 수도,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수많은 두려움을 대하는 자세로서도 이해할 수도,
각자의 상황에 대입할 수도 있어서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
어쩌면 로이킴은 활동을 중단하고 쉬었던 시간을 생각하며 작사를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곡을 만든 로이킴의 의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듣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해석을 더할 수 있으니
더 아름다운 곡이라 생각한다.
한때는 꽃길만을 걸으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기도 했지만
어느새 돌아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황량하고 쓸쓸한 외로움 속에 내던져진다.
시들시들해져 버린 초라한 내 곁엔 인지하지 못했던 소중한 대상만이 남아 있다.
인생에 봄바람이 불어온다고 마냥 해맑게 설렐 일도 아니며,
뜨거운 태양 아래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틸 것이고,
그 시간들을 견뎌 온 것들에 감사하며
함께해 온 것들을 간직할 것이, 삶을 살아가며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