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가난만 남았을지라도
매일의 노동을 그만두고 나자 불면이 사라졌다.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닌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 뇌를 가동하고, 출퇴근을 하며 물리적인 시공간을 이동하는 일을 멈춘 일은 너무나도 통쾌하고 짜릿하다. 물론 그 대신에 수입은 한 푼도 없다.
다만, 구직활동을 한다는 전제하에 실업급여를 받게 되어 최저임금에서 큰 차이 나지 않는 정도의 수입은 발생할 예정이다. 차곡차곡 모은 돈을 조금씩 아껴 쓰는 게 아니라 빚만 남아 있어서 이자도 매월 부담하고 있어 궁핍한 상황이긴 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그럼에도 노동하지 않는 삶이라는 걸 살아본 바가 별로 없어서인지 일단은 그저 황홀할 정도로 자유롭고 기쁠 따름이다. 왕복 3시간가량 걸리는 출퇴근을 하면서 좀비 같은 상태로 출근길에서 지하철이 선로로 들어올 때 누가 나를 실수로 또는 고의로 밀어주기를 바랐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내 정서적 안녕은 기적에 가깝다.
수당 한 푼 주지 않는 야근을 참 성실하게 꾸역꾸역 했고, 장염에 걸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일주일이 넘도록 죽이나 누룽지만 먹고 기운이 없어 링거를 맞아가면서도 휴가 하루 내지 않고 근무를 했던 일이 떠오른다. 취재 다녀오다 넘어져서 손바닥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약국에서 지혈제 가루를 뿌리고 대충 동여매고 마감 한 뒤에야 응급실에 가서 처치받았던 나도. 미련스러울 만큼 성실했고, 그게 미덕이라고 믿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평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할 거야 하는 오만한 마음과 쓸데없는 자부심.
직장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이다. 사람 하나 빠져나가도 큰일은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 그 사람이 대표라고 해도.(대체나 대안은 어떻게든 생긴다) 삶도,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때는 전부 같았던 것도 지나고 보면 자연스레 잊히기도 하고, 그냥 추억 정도로 남기도 한다.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의 거의 전부를 보낸 어딘가에 속한 삶이 나에게 선물해 준 것도 참 많았다. 조직 안에 속하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것도 있었고, 견디지 못할 지독했던 개인사도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당시에는 고마운 줄 몰랐다는 게 그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후에 나에게 별로 고마움을 못 느끼는 사람들을 봐도 별스럽지 않게 친절을 내어주었다.
비노동자로서의 생활을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하루하루가 닳아 없어지는 것만 같아 아깝고 소중한 날들이 될 줄은 몰랐다. 노동자로 살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