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멸망의 카운트다운
OTT 요금에 대해 요즘 말이 많다. 광고형이 새로 나오고, 공유 계정을 금지한다고 하고, 요금을 올린다고 하고, 국내 OTT 합병설 등등. 거기에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까지 한국만 엄청나게 오른다고 하니 이래저래 매월 고정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높아져서 치솟는 물가 체험을 OTT와 플랫폼으로도 제대로 하는 셈이다. 한때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브이, 티빙, 웨이브 이 모든 것을 다 구독해서 봤을 정도로 콘텐츠 중독자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하나둘 줄이고 줄여서 넷플릭스 베이식만 유지 중이다. 중간에 해지하면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어진 베이식 요금제라 한두 달 쉬고 돌아가려던 계획도 일단 취소다. 크헝.
딱 하나 남은 유일한 넷플릭스에서 이번달 요금을 아깝게 하지 않을 작품을 찾아 헤매다가 딱 찾았다 싶은 것이 바로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라는 청소년불가 애니메이션이다.(청불의 이유는 다른 건 없고 이야기 전개 상 신체노출이 불가피한 것뿐임)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는 그래픽노블 느낌이 나는 애니메이션이고 10회 분량이다. 지구에 큰 행성이 부딪히게 되어 모두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설정이고 충돌까지 7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내용이 전개된다. 일단 3화까지만 봐야지 하다가 10화까지 정주행 해버렸을 정도로 몰입감이 좋았다. 아포칼립스물을 특별히 더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마냥 희망적이고 몽글거리는 것 보다는 더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반적인 아포칼립스물과는 달리 종말이 다가오면서 긴박한 사건이 터진다거나, 대반전이 있거나, 적에 맞서 싸우는 그런 류의 스토리가 아니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줄거리랑 내용 소개가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 보실 때 신경 쓰이실 분들은 빠르게 패스
지구가 지구보다 더 큰 행성에 부딪혀(크기 확인은 정확하지 않지만 화면에 보이는 느낌으론 커 보임) 완전히 소멸될 것이 확정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일탈을 실행에 옮긴다. 약탈을 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기간이 7개월이다 보니 남은 시간동안 그동안 살면서 해보지 못한 것을 하려고 난리법석이다. 다자연애를 하거나, 나체족으로 살아가거나,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나 춤, 떠나고 싶었던 여행지로 떠나느라 일상은 내다 버린지 오래다.
주인공인 캐럴은 그런 난리법석이 불편한 사람이다. 종말이 오는 건 알지만 가능한 이전과 다름 없는 일상을 누리고 싶은데 그런 캐럴을 주변에서는 그냥 두지 않는다. 가족(부모님과 언니)도 마찬가지. 지구의 종말이라는 것은 개인 한 사람의 생명에 대한 시한부가 아니라 지구에 살고 있는 종 전체에 시한부가 선언되는 것이라 좀 다를 수는 있지만 개인의 선택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내일이 마지막이어도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사는 것이 더 편안한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캐럴의 언니는 활달하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그려진다. 지구 종말을 맞이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런 삶을 산 것처럼 나온다. 하지만 자매가 떠난 여행에서 둘은 계솓 부딪히고 외줄타기 같은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동생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남들을 신경쓰고,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살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그 일을 하면서 산 것은 캐럴이고 그 용기가 부럽고 멋지다고.
해보지 않은 것을 하기 위해 남은 에너지를 쓰는 선택도, 해왔던 것을 유지하기 위해 남은 에너지를 쓰는 선택도 모두 자유로운 선택일뿐 어느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캐럴은 무가치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이 원래 했던 직군인 행정직으로의 일상을 이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회사에서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고 사람들과의 교류에 진심이 되어 있다.
더 자세하게 스토리를 소개했다가는 김빠진 맥주가 될테니 이왕이면 탄산 가득한 탄산수나 시원하고 톡 쏘는 맥주를 곁들여 직접 감상하기를 권한다. 이 작품을 권하는 이유 몇가지는 다음과 같다.
일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함
삶의 엔딩을 알게 되면 어떤 점이 달라질지 실사판으로 시뮬레이션 하게 됨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게 도움을 줌
지구가 망한다 해도 절망적이지 않은 분위기로 애니메이션 정주행을 편하게 할 수 있음
그리고 요것 추가.
차 번호가 CL -2NE1
감독님이 케이팝 팬이실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