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작성과 함께 매달 나가는 고정비 지출을 점검하고 OTT 구독 비용도 체크해서 넷플릭스만 남기고 다 해지했다. 물론 아직도 웨이브 연간 구독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티빙은 구독을 끊었었다. 그런 나에게 다시 티빙을 가입하게 만든 작품이 바로 <이재, 곧 죽습니다> 시리즈다. <이재, 곧 죽습니다> 덕분에 티빙 가입자가 늘어났다고 하니 나도 거기에 일조한 셈. 웹툰으로 먼저 원작을 보았고 느리게 정주행을 하는 사이에 시리즈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져갔다.
8개의 에피소드를 쉬지 않고 정주행으로 몰아봤다. 일단, 그만큼 몰입감이 있다는 것이고 높은 기대치가 있던 만큼 실망을 할 법도 했으나 드라마는 드라마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 그렇지 않았다. 원작과 드라마 모두 다 만족스러운 작품을 오랜만에 만났다.
수년간 취업에 실패한 흙수저 이재가 연애마저 포기하고 절망 끝에 옥상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난 뒤 벌어지는 이야기로, 죽음은 내 삶의 고통을 끝내줄 하찮은 도구라고 말한 벌로 죽음에게 불려 가 12번의 죽음을 더 겪게 되는 스토리다.
12번의 죽음 에피소드에는 잔인한 장면과 자극적인 요소가가 많았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그중 어떤 것보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는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기로 태어났다가 친부모의 학대와 폭행으로 죽은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다. 이 아기는 스스로 일어날 수조차 없다. 너무 어려서.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과 옹알대는 것밖에 없는, 태어난 지 5개월 밖에 안된 아기에게 자신을 방어할 방어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아기가 느꼈을 공포와 불안, 고통에 대해 에피소드를 통해 구체적으로 감정이입이 되어 겪어보니 너무나 끔찍했다.
대한민국의 높은 자살률은 OECD 국가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높은 순위에 랭크된다. 이재가 원했던 그저 남들처럼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삶을 평범한 삶이라 부를 수 없을 지경의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가슴 아프지만 현실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선택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진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삶은 기회이며, 누군가에게는 그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5개월 아기의 사례).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죄책감,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 달라는 당부일 것이다.
모든 자살 시도자에게 이재처럼 자신을 사랑하고 믿으며 지지해 주는 어머니나 이성친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도 절연하고, 친구 하나 없이 정말 외로운 섬처럼 남겨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기회가 다 소멸한 것은 아니라는 게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한다.
두려움에 떨면서 살거나, 자신이 아닌 채로 사는 것은 사는 게 아니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울림을 주는 시리즈.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자살예방 캠페인 드라마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대로 살기가 싫어서 죽음을 선택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