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를 쓴 뒤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지만 현재 상황을 직시할 수 있었다.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부채현황을 체크했다. 매달 나가는 원금과 이자의 총액, 그렇지 않은 대출의 경우 만기 도래 시 어떻게 상환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아니, 자기 빚이 얼만지랑 매달 얼마 나가는지 몰랐다고?
몰랐다. 모르고 싶어서 몰랐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그동안은 버는 것보다 지출이 많았던 때가 허다했고 가끔 저축을 하긴 했지만 해지하면 고스란히 부채 상환으로 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축을 한 것은 잘한 일이긴 하지만.
고개 돌리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이게 니 빚이고 매달 나가야만 할 돈이야,라고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스스로에게 알려줬다. 대체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모양이냐고 한심하다며 혀를 차지 않았고, 이제 이렇게 정리하고 알았으니 하나씩 다른 것도 하면 된다고 달래가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멘털 관리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게 바로 자기혐오, 비난 금지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반드시 끝까지 내 편이라는 확신을 스스로에게 줘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난다.
그다음에 한 일은 매달 나가는 고정비(구독료, 후원금) 체크였다. 그중에 유지해야만 할 필요성이 확인된 것만 빼고는 모두 정리했다. 생각보다 정리는 어렵지 않았다. 한 때는 디즈니플러스, 애플 tv까지 온갖 ott를 구독했지만 정리했고 남은 건 이제 넷플릭스(월 9,500원/현재 이 요금제 신규가입은 중단상태) 하나뿐이다. 밀리의 서재는 kt 멤버십 포인트로 결제,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는 티빙 이용을 위해 3,300원 유지로 일단 정리했다. 후원금 중지할 때는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소득 상황이 개선되면 후원은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구독료 해지
쿠팡 와우 멤버십
유튜브 프리미엄
웨이브
와인 구독(퍼플독)
카카오 이모티콘 플러스
윌라 오디오북
리디북스 셀렉트
구독료 유지
넷플릭스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티빙)
카카오 톡서랍
밀리의 서재
후원 중단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국경없는의사회
참여연대
콘텐츠 중독자답게 주로 ott와 전자책, 오디오북 관련 구독이 많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사용료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만 빼고 정리했다. 그리고 쿠팡플레이에서는 유독 뭔가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 실제 이용 정지일이 한 열흘 정도 남았기에 몇 개 작품은 그 안에 볼 예정이다. 네이버 멤버십 플러스는 티빙에서 볼 콘텐츠 보고 나면 다음 달이나 그다음 달에 해지 예정이다.
인터넷 3대 서점(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의 매년 플래티넘 고객이었던 것에서도 이제 벗어났다. 교보문고만 플래티넘 회원 유지 중인데(구매금액이 여전히 높다는 의미), 이전에는 플래티넘을 넘어 프레스티지 회원이라 연말에 특별 선물까지 받았던 걸 생각하면 많이 자중한 것이긴 하다.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 이만큼 한 걸음을 내디뎠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구독료 말고 생활에서 나가는 고정비용에 대한 예산 수립(식비, 생활비, 교통비, 문화비, 통신비, 의료비 등), 변동 비용(경조사, 선물 등)에 대한 예산 수립도 필요하다. 실업급여라는 명확한 예상 소득이 있으니 그 안에서 대략 정리해 두긴 했지만 아직 실행 단계니까 1월이 지나 봐야 실제로 그 금액을 쓰며 생활해 볼 수 있으니 그 후에 약간의 조정을 거쳐서 2월에는 예산 수립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침대(매트리스), 정수기, 비데 렌탈료가 매달 나가고 있어서 이것도 합하면 비용이 적지 않다는 것도 가계부 정리하며 새삼 알게 된 사실이다.
비데 2개: 29,800
매트리스 2개: 32,700
정수기 1개: 26,900
각각 월 사용료가 30만 원 이상이면 할인 혜택을 주는 카드를 갖고 있고 할인 혜택을 받을 만큼 사용하곤 했지만 이제 신용카드는 1개로 줄일 거라 카드 할인 혜택은 오히려 줄어들 예정이다. 월급이 들어올 땐 소소한 비용처럼 인식되었는데 지금 보니 10만 원에 육박하는 큰돈을 보인다.
주말에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돈 나간 것, 나갈 것을 생각하면 잡아놓은 비용이 빠듯해 보여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방법을 찾았다. 실업급여 말고 추가 소득을 만들면 된다. 갑자기 어디서 소득을 만들 길은 없고, 방법은 당근!
그렇다, 바로 그 당근! 당근으로 샤넬 향수를 팔았다. 미개봉 제품이었고, 작년에 일본 여행 다녀오면서 샀지만 뜯지 않고 두길 참 잘한;; 제품이라 당근으로 잘 팔았고, 그 돈으로 떡볶이에 어묵, 순대, 튀김 세트까지 먹고 남은 건 냉장고에 넣어뒀다. 저녁은 남겨둔 순대와 어묵을 데워서 먹고 해결. 그리고 편의점에서 1+1 팝콘도 사다가 먹으며 쿠팡플레이로 시리즈 정주행을 하며 행복해했다.
*사실 최대한 밝고 명랑하게 쓰고 있지만 내적 갈등이 심했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전쟁 직전의 상태가 유지되는 중이다. 교전 중이거나 휴전 상태가 아니라 전쟁 터지기 전의 긴장상태라 힘들긴 하지만.
그냥 빨리 다시 취업해 버리면 간단하잖아. 고민할 거 없이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이전처럼 높지는 않은 곳, 전 보다는 덜 빡세고 그대신 적당히 버는 곳으로 골라서 불러주는 데 있으면 빨리 들어가. 이러다 어디서도 안 불러줄 수도 있잖아. 이전 대비 소득은 줄어도 지금 이 지경인 것 보다는 그게 낫지않아?
멀리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기로 했잖아. 다시 조직에 속한 채로 도돌이표 할 거면 왜 퇴사했어. 힘들어도 다른 삶을 살아보기로 했으니 버티고, 일단은 제발 좀 쉬어. 취업사이트 뒤적이는 거 그만하고. 쉬고 난 다음에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로 경제활동 할 계획을 세워야지.
아직도 쉬는 게 제일 힘든 실업급여 수급자다. 자꾸만 뭘 뒤적이고 불안해하느라 온전히 쉬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답답하다. 남은 1월의 절반이라도 좀 쉬어보자, 제대로. 가계부는 꼭 붙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