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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Feb 10. 2024

술과 함께(2)

이런 병은 처음입니다

이런 병은 처음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건강관리공단 직원을 만나러 갔다. 보안 때문에 공단 건물 내에서는 만날 수 없고 자신들이 지정한 빈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곳에 가보니 나와 통화를 했던 과장과 그의 상사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이 함께 들어왔다. 


 “많이 놀라셨죠. 저희도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그런 병이 다 있나? 아무리 희귀병이라지만 희귀해도 너무 희귀하다. 게다가 하필 내가 그런 병에 걸리다니. 아니 이런 병이 존재한다는 것부터 이해가 안 간다. 그들이 말한 내 희귀병은 바로 ‘아세트알데히드 탈수효소 과민 증후군’이란다. 쉽게 말해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제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체내의 다른 성분과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이런 현상으로 인해 생명에 지장이 생기는 상황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거기까지는 무척 놀랍고 무서웠지만 그다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희귀병에 대해 진지하고 엄숙하게 이야기를 하는 그들 앞에서 말이다. 그들이 해 준 다음 이야기는 이렇다. 


 “에,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하루에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정도 섭취해야, 그러니까 매일 술을 드셔야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단, 과음을 하시게 되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저희가 간편한 음주측정기를 드릴 테니 꼭 측정하며 드셔야 합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병이 있어요. 당신들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내가 진짜 듣자 듣자 하니까 정말!”


 참다 못해 빽 소리를 지르자 문이 열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서양사람 둘이 들어와서 가볍게 목례를 한다. 이 희귀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란다. 그 뒤로 짙은 색 양복을 입은 남자와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자가 들어온다. 주류회사 직원들이란다. 국가의 희귀 난치병 의료지원 예산의 일부로 나에게 평생 주류를 지원해 주겠단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대한민국에서는 나 혼자뿐이고 세계를 통틀어 10명이 넘지 않는단다. 이 병에 대해 사람들이 알게 되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니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며 이런저런 조항이 잔뜩 적힌 몇 장의 서류를 내밀며 읽고 서명을 하라며 다들 나를 둘러싼 채 서서 지켜보는 게 아닌가. 읽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서류를 넘기고 마지막 장에 서명을 하며 무엇엔가 홀린 기분으로 건강보험관리공단을 나섰다. 


술과, 술과, 술의 나날

 지금 생각해 봐도 그날의 기억은 참 어처구니없다.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꿈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어떤 판타지 소설을 한 편 읽은 것 같다고 할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허구가 아닌 사실이다. 내 인생에 벌어진 일이며 내가 겪어온 일이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하긴, 20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술과 함께 하는 내 인생이 익숙하고 편할 때도 됐다. 아니 한참 지났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도 길고 어려운 희귀 난치병인 ‘아세트알데히드 탈수효소 과민 증후군’ 덕분에 그 병에 걸리기 전에도 늘 함께했던 술을 무료로 20년째 마시고 있으니 어쩌면 이 병은 나에게 있어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매번 음주측정을 하던 것도 이제는 감이 와서 조금 먹으면 적정 수치를 알게 된다. 목숨이 달려 있으니 과음은 당연히 하지 않는다. 아, 물론 나를 연구하고 있는 기관에서 분기에 한 번씩 집으로 와서 혈압과 맥박을 재고 채혈을 하고 몸무게와 체지방을 측정해 간다는 게 번거롭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만하다. 

 사실 희귀병 진단 이후 내가 단지 매일 술만 마시고 숙취 없이 거뜬하게 다음 날 일어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희귀병 진단 이후 초반에는 신약으로 치료를 시도했다가 부작용이 나기도 했다. 한 달에 7~8kg이 줄고, 다음 달도 여전히 체중이 똑같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한 번 빠진 체중은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다.(할렐루야~) 급격한 체중 변화 때문에 신약 치료를 중단했고, 별다른 치료제 없이 꾸준히 음주생활을 하는 것으로 내 희귀병은 악화되지 않았다. 다만 15kg이나 줄어든 체중 탓에 옷이 헐렁해져 옷을 사느라 옷값이 많이 들었다는 것뿐.

 무료로 술을 마시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숙취가 없다는 점이다. 알코올 분해효소는 어찌 된 일인지 조금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치료적 측면에서 보자면 치료가 안 되는 상태고 그러니 난치가 맞긴 하겠다) 적정 알코올 농도 이상을 마셔도 알코올 성분을 말끔히 분해해 버린다. 그래서 다음 날 두통이나 피로함 없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호사를 누린다. 한 가지 조금 답답한 것이 있다면 그건 이런 사실을 어느 누구에도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입을 열었다가는 나에게 제공되는 지원이 끊기는 것은 물론 내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서약만 잘 지킨다면 나는 장수를 할지도 모른다. 그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매일 위스키를 마시는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87세 노인처럼 말이다. 그 기사에서는 노인이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뛰어나 젊어서부터 위스키를 마시고 지금까지 즐겨 마셔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부러워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지. 그래, 인생은 예측불허! 그래서 살 맛 나는 거 아니겠어? 

 주류 회사의 협찬에서 소주는 원래 못 마셔서 거절했고 맥주나 와인, 위스키, 가끔은 막걸리를 포함한 전통주를 즐긴다. 해당 주류 회사의 술을 블로그에 포스팅하며 시음단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무감에 쓰다 보니 콘텐츠가 쌓여 가면서 자연스럽게 전문적인 글이 나왔다. 그러다 보니 술에 대한 칼럼을 쓰는 주류 칼럼니스트가 되어 신문지면에도 기고할 기회가 주어졌다. 술에 대한 포스팅을 위주로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면서부터는 파워블로거가 되었다. 일 방문자 평균 10,000명은 거뜬히 넘겼다. 가끔이긴 하지만 공중파 방송은 물론 케이블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술만 마시는 건 아니지 않은가. 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안주. 술과 안주의 궁합, 술에 어울리는 안주 매칭하기로 요리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몰랐는데, 나에게 숨은 요리 실력이 쥐꼬리만큼은 있었다. 덕분에 집에서도 가끔 혼자 안주를 만들어 반주를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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