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환갑 파티
나는 그렇게 술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여전히 1인 출판사는 운영해 왔다. 큰돈은 못 벌어들여도 근근이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흔두 살에 입학한 심리상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임상심리사 자격증과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터라 개인 상담소를 열어 예약제로 소규모 상담을 하며 1인 출판사를 병행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 스스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에 좀 지치는 상황이 닥쳤다.
숨 고르기를 하자는 의미로 알고 지내던 파워블로거 분 중 글 솜씨가 뛰어난 한 분에게 취재를 부탁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술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찾아 그들에게 ‘주류 아티스트’라는 중의적 의미의 이름을 붙이고 인터뷰를 진행해 ‘주류아티스트’ 시리즈로 무크지를 냈다. 인터뷰로 구성된 콘텐츠로 각 아티스트의 작품 활동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작업 동반자가 되는 술에 대한 소개도 곁들였다.
처음에는 블로그에 연재를 하며 동시에 SNS에도 퍼 날랐다. 초반에는 인지도가 높은 아티스트가 몇 안 되었지만 꾸준히 작업하다 보니 제법 알려진 아티스트도 섭외해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댓글과 사람들의 피드백을 토대로 콘텐츠 수정 작업을 거쳐 전자책으로 출판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다. 이를 다시 종이책 콘텐츠에 맞게 다듬어 종이책 출판까지 하면서 본격적인 ‘주류 출판사’로 발돋움했다. 그렇게 한 번 주류 콘텐츠 출간을 하고 나자 탄력이 붙었다.
독특한 취향을 반영한 bar나 pub을 소개하는 원고, 술의 산지를 따라 떠나는 여행기, 한국의 주류문화를 분석하고 비평한 인문학적인 원고 등 주류 관련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책으로 펴냈다. 그러다가 콘텐츠진흥원의 우수콘텐츠 상도 받고 번역지원도 받아 해외로 판권을 팔게 되는 기회도 얻었다. 이쯤 되니 자신감이 생겨 콘텐츠 기획안을 짜서 제출해 출판지원금을 타 내기까지 했다.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우리나라 김** 작가와 함께 맥주 기행을 하는 내용의 콘텐츠 기획안이었다. 그 옛날 20대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을 읽으며 막연하게나마 꿈꾸던 기획안을 다듬어서 제출하고 채택된 결과라 더없이 뿌듯했다.
김** 작가는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팬들이 알아서 만들고 모인 홈페이지 게시판 모임에서부터 맺어진 오랜 인연의 작가다. 이십 대 후반의 내가, 삶의 색깔이 온통 무채색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기대어 웃고 울었던 소설이라는 세계에서 만난 작가. 그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렇게 내가 낸 기획으로 함께 책을 펴내게 되었다니! 그러고 보면 이 모든 게 희귀병 덕분 아니겠는가.
1인 출판사와 상담소를 운영하며 모아둔 돈의 일부로 3년 전에 오픈한 나와 남편의 PUB인 white rabbit에서 60번째 생일 파티를 할 예정이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그것도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태어나서 늘 크리스마스에 묻어가야 했던 나는 언젠가부터 생일에 별 감흥이 없었다. 요상한 희귀병에 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주거나 삶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은 아니지만 그래도 병은 병 아닌가. 그 진단을 받은 이후부터는 매년 생일마다 나에게 무사히 잘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고 스스로 편지를 쓴다.
오늘도 60번째 생일을 맞아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야 하지만 이번 생일만큼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20년 전 희귀병 판정을 받을 때 병명은 모르고 희귀병인 것만 알고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삶이 얼마 남지 않을 나 자신에게 썼던 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 삶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얼마 안 남은 생의 마지막 날 눈감기 전에 스스로에게 읽어주려고 했었다. 오늘은 그 편지를 읽어주고 싶다. 60번째 생일을 맞은 나에게 20년 전 충격 속에서 썼던 그 편지를.
사랑하는 수진에게
수진아, 이 편지를 언제 어떻게 읽게 될지 모르겠다. 정말 운이 없다면 한 달, 운이 좋다면 1년, 어쩌면 그 이상? 솔직히 너무 무섭고 놀라서 아직도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긴장하고 스트레스받으면 아랫배가 콕콕 쑤시고 아프잖아. 화장실 여러 번 다녀와도 계속 가고 싶잖아. 지금이 딱 그래. 그래도 지금은 견딜만해. 앞으로 엄청나게 끔찍한 고통이 있을 수도 있고, 짧게 지나가는 아픔으로 모든 게 끝날 수도 있겠지.
나는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 가능하면 아프지 않고 평온했으면 좋겠어. 생애전환기에 이런 기막힌 통보를 받고 하필 전환이 이런 식이라니 얼마나 속상하니. 내가 너에게 이 상황에서 편지를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야.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서.
그동안 너에게 비난의 말과 날 선 시선만 보냈던 것 진심으로 사과할게. 너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너와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정말 아쉽다. 앞으로 어떤 고통이 닥쳐오더라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네 곁에 꼭 있을게. 외롭지 않게 꼭 안아줄게. 너와 함께한 40년 동안 나는 참으로 못난 친구였지만 너와 함께여서 고마웠어. 마지막 가는 길에는 너를 안고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사랑해, 수진아.
이 짧은 편지의 글씨는 꾹꾹 눌러서 썼음에도 삐뚤삐뚤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래,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엉엉 울면서 썼던 그 편지다. 다행히 나는 20년 동안 잘 살아왔고 여전히 건강하다. 몸이 건강한 것도 고맙지만 더 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게 더 기쁘다. 황당한 희귀병을 판정받던 그날 이후로 나는 나 자신에게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주었다. 항상 믿고 지지해 주며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줬다. 충고는 최대한 신중하게, 짧게 했다. 늘 몇 가지 일을 병행하며 몸을 혹사시키지도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했고 그런 나를 게으르다고 탓하지 않았다. 내가 20년 동안 이 희귀병의 정체를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지내면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은 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잘하지 않고 살았던 지난 시절의 삶 때문이다. 말하지 않기, 입 다물기야 말로 나에게는 가장 편한 일이었다.
오늘은 나의 60번째 생일, 인생은 60부터라고 노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던 말이 지금은 정말 그 뜻 그대로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의학발달로 건강관리도 전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하게 된 덕분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 가끔은 내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사실마저 잊곤 한다. ‘아세트알데히드 탈수효소 과민 증후군’은 여전히 치료제가 따로 없고 대한민국에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나뿐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는 데 불편함이 없으니 이대로도 문제없다.
생일파티 준비가 되었다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와 펍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조명이 다 꺼져 있고 손님이 한 명도 안 보인다. 뭐지? 설마 무슨 서프라이즈 파티 같은 걸 기획한 건가? 아이 참, 이 사람. 깜짝 놀라는 척을 해주긴 해야겠지? 웃으며 놀라는 척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눈앞에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어? 이 사람들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인데. 어디서 봤지? 기억을 더듬던 나는 순간 입을 쩍 벌린다.
“아. 아니.. 당신들은!”
내 눈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은 20년 전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건강보험관리공단 직원 둘, 연구원, 주류회사 직원이었다. 이 사람들이 왜 내 환갑 파티에 온 거지? 워낙 특이한 희귀 난치병 환자라 특별히 축하라도 해주러 온 걸까?
갑자기 빔 프로젝트에서 어떤 화면이 플레이된다. 내가 희귀 난치병 설명을 듣던 순간이다. 저게 왜.. 녹화가 되어 있는 거지? 어이가 없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남편이 펍 한 구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남편이 연출한 작품이었다. 이런 희귀병이 어떻게 있겠냐는 것이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는 내가 심리상담 공부를 한다고는 해도 우울과 불안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힘들어도 정작 할 이야기는 속으로 삼키고 마는 나를 보는 게 속상했다고 한다. 창업 준비하느라 과로하면서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다음날 숙취로 자학하는 것을 무한반복 하는 나를 보며 이런 작품을 준비해 연출했다는 것이다.
묻고 따질 기운도 없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나 정신이 돌아오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진정한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 주고, 매일 적정량의 술만 마시고 과음하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콘텐츠로 만들고, 원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며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지냈으니 이런 엄청난 사기극에 행복하게 넘어가줘도 좋을 것 같다.
아, 그래도 등짝 한 대는 제대로 후려치고 싶다. 이 인간이 증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