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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Feb 15. 2024

스위트 드림(1)

 여자는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눈에는 핑크 바탕에 흰 양이 여러 마리 그려진 수면 안대를 하고 있었고 아이보리 색 양모 이불을 목 바로 아래까지 덮고 있었다. 이불은 고르고 균일하게 덮여 있었고 뒤척인 흔적이 없었다. 여자는 그렇게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은 듯했다. 소독약 냄새가 방 안에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대원이 큰 소리로 여자를 불러 보아도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원이 다가가 여자를 살짝 건드렸다. 발이라고 짐작되는 부분을 건드려보았는데 건드리자마자 발이 있을 것 같았던 자리가 푹 주저앉았다. 당황한 대원은 아주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냈다. 이불을 걷어내면 여자가 그제야 부스스 몸을 움직여 무슨 일이냐며 일어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여자는 그대로였다. 

 이불을 걷어내자 여자의 벗은 몸이 드러났다. 방금 전 대원이 건드렸던 왼쪽 발은 부서져 있었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 놓은 발처럼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걷어낸 이불 아래로 드러난 여자의 복부는 텅 비어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모든 장기가 다 적출되어 뼈만 남아 있었다. 수면 안대를 조심스레 걷어 내자 안구가 적출된 커다란 구멍만이 남아 있었다. 머리 역시 텅 비었다. 뒤통수를 따라 뚜껑처럼 열린 머리 안쪽에는 뇌가 보이지 않았다. 입안을 확인해 보니 치아 또한 발치되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신은 함부로 다뤄진 흔적이 없었다. 찰과상도 보이지 않았다. 칼질은 아주 세련되고 날렵하게 이루어진 듯했다. 방어흔도 없었고 오로지 비워지기 위한 흔적만이 있었다. 


 현장에 도착한 과학수사대원들은 사진을 찍고 증거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을 모으기 위해 애썼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섬세하게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도중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집 밖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집 안에서 들려오는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희미한 소리였다. 모두 행동을 멈추고 집중하자 짧게 두 번 ‘미야오 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어 올렸던 대원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방 옆 베란다 뒤쪽에 작은 문이 하나 보였다. 살짝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니 고양이 두 마리가 잽싸게 방을 가로질러 열린 방문을 지나 부엌 쪽으로 뛰어간다. 싱크대 아래 구석진 곳으로 숨어든 고양이 두 마리를 어렵사리 잡아당겨 끌어내 살펴봤지만 별다른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고양이 식기에 사료와 물이 담겨 있고 베란다에 화장실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인 듯했다. 

 대원들은 다시 흩어져서 하던 일에 열중했다. 침대 옆 협탁에는 스탠드가 켜진 채로 놓여 있었다. 스탠드는 협탁의 오른쪽 모서리 끝에 정확하게 맞춰져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거의 움직였던 적이 없어 보였다. 스탠드 옆에는 바닥에 찰랑거릴 만큼 레드 와인이 담긴 와인 잔 하나가 있었다. 목이 가느다랗고 긴, 잔을 들어 바닥을 보니 이탈리아 브랜드가 적혀 있는  고급 와인 잔이었다. 와인 잔 옆에는 스마트폰이 있었으나 잠겨 있었다. 중앙의 홈 버튼을 누르니 바탕화면이 뜬다. 바탕 화면에는 아까 그 고양이 두 마리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이 든 사진이 깔려 있다. 


 침대는 여자 혼자서 자기엔 꽤 넓어 보이는 킹 사이즈였다. 싸구려 매트리스가 아닌 이름난 브랜드의 매트리스에 침구류도 모두 호텔 스타일로 정돈되어 있었다. 침대가 방의 한쪽 구석이 아닌 가운데에 위치한 걸로 보아 이 방은 오로지 잠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진 것 같았다. 흰 침대보에는 피 한 방울 튀긴 흔적이 없었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자의 머리카락은커녕 누워있는 여자의 머리카락조차 한 올 없었다. 베개는 라텍스 베개로 목 쪽이 더 낮게 파여 있었다. 여자가 베고 누운 베개를 조심스레 들어 살펴보니 희미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얼룩의 위치는 누우면 바로 눈가가 닿을 부분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침대 시트에서 눈물 자국처럼 보이는 얼룩이 남은 베개 커버라니 어딘가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여자를 들것에 옮겨 부검실로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발이 부서져 버릴까 봐 걱정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침대보로 감싸고 순식간에 들것에 옮기면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이 여자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누가 손을 댄 것도 아닌데 한쪽 발과 종아리, 허벅지가 천천히 주저앉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가락과 팔까지 번졌다. 공들여 쌓은 도미노가 한순간에 무너지듯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이 사건은 이제 우리가 맡아서 수사하겠습니다. 시신은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웬 외국인이 성큼성큼 방에 들어와 똑 부러지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황한 대원이 되받아친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당신은 누구요?”

 그런데 저 외국인은 어딘가 낯이 익다. 생김새가 어딘지 모르게 꼭 배우 같다. 

 묻는 말에 답도 없이 외국인이 여자를 들어 옮기려 다가선다. 텅 빈 머리만 목에 간신히 붙어 있던 여자의 입술이 움직인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장님. 누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꼭, 누가, 왜, 나를,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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