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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Feb 22. 2024

잘난 척과 남 탓 금지령

누구를 위한 글쓰기인가

 블로그, 카페, 인스타그램, 브런치... 콘텐츠의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꿀렁꿀렁 여기저기 넘어 다니며 수많은 글을 읽는다. 어지러워진다. 이런 글에서 잘난 척(대놓고, 은근히, 소심하게), 남 탓(자아성찰은 없거나 미미하고 남 탓만 한가득, 스스로에게 피해자 프레임 고정) 금지령을 내리면 어떤 글들이 될까 생각해 본다.


 우선 내 글이 대상이다. 내가 공개한 많은 글(브런치의 발행 글 개수를 보고 기겁할 뻔)에서 잘난 척과 남 탓을 촘촘한 체에 걸러 탈탈 털어내고 나면 뭐가 남을까? 후~하고 불면 날아가버릴 먼지만 남고 남는 게 없는 건 아닐까 하며 가슴이 철렁한다. 한때는 남 탓을 정말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책이 너무 심해서 그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열심히 남 탓을 해대는 건 아닌가 하고 변명을 해본다.



 잘난 척과 남 탓을 하면 무조건, 절대로 안된다는 취지로 쓰는 글은 아니다. 때로는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속 외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난 척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칭찬이 어떻게 다르게 묘사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남 탓과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한 일침이 어떻게 다른 지도.


 이런 것도 자기 검열의 일부일까? 글을 쓸 때 스스로 제약사항을 만들어 두는 게 득일지 실일지 모르겠다. 결국 되물어본다. 잘난 척과 남 탓을 금하겠다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인지.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염려하는 게 시작이었나, 스스로 떳떳한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시작이었나.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늘어가는 구독자수,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좋아요 숫자 때문에 조급해진 마음이 더 앞선 것일 수도 있다. 일기장에 쓰는 글이 아니기에, 누군가 읽을 것을 상정하고 쓰는 글이니 당연히 읽는 사람을 생각해서 써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독자를 생각하고 쓰는 것과 잘 보이기 위해서 쓰는 건 다.


 그러고 보니 최초의 독자인 나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옳겠다. 내가 쓰는 글은 최초의 독자가 읽고 만족할만한 글인가? 읽고 피로해지거나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인가? 읽고 나서 다른 글을 읽기도 전에 이미 잊힐 그렇고 그런 글인가? 저자 속 편하겠다고 토해낸 그런 글인가?


 문제는 잘난 척이나 남 탓이 아닐 것 같다. 그건 두드러져 보이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스스로의 글에 만족을 못하고 있을 뿐. 매끈하게 잘 다듬어져서 빛나는 글을 보면 어깨가 처지고, 한참을 골라낸 단어로 정성껏 짜낸 고급스러운 직조물 같은 글을 보면 경탄을 하면서 동시에 울상이 되어버리는 것을 안다. 어쩌랴, 이것이 지금의 내 모습인 것을. 다른 누구보다 최초의 독자인 나 자신을 만족시키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물쩍 포기해 버리고 뻔뻔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쓰는 나와 읽는 나여, 그대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어렵겠지만 누구 하나라도 만족시키기 위해 매일 노력할 테니 누구라도 불만족스럽거든 한쪽을 멈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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