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운명론으로 풀어서 설명하거나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풀이하고 싶지는 않지만 확실히 흐름이라는 것도 있고 타이밍이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서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흐름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떻게 될지 결론이 나지 않은 두 건의 취업 인터뷰가 있었다. 각각의 회사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두 번 다 1시간 반 가량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했다. 마음을 비우자고 스스로 생각하고 간 자리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취업 인터뷰인데 정말 마음을 제로에 가깝게 비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인터뷰는 점점 마음이 채워지기도 했고, 어떤 인터뷰는 점점 마음이 비워지기도 했다. 상대방 역시 그랬을 것 같고 그건 상대방의 마음이기에 확인할 수가 없다.
두 번째로 만난 대표와의 취업 인터뷰에서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다가 다시 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왔고 첫 번째로 받은 질문은 이랬다.
왜 작가가 안되셨어요?
맥락상 결코 공격적인 질문도 아니었고, 작가가 응당 되었어야 하는데 왜 안된 거냐 와 같은 책망이 묻어 있는 그런 류의 질문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전공이 문예창작이고 동기나 선배들이 유명 작가이기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지원한 포지션은 글을 쓰는 것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직무여서 편하게 질문해 본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내 대답은 굉장히 빨리 나왔다. 질문을 받고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을 했다.
작가가 안된 게 아니라 못 된 거죠.
너무 쉽게 빨리 대답해버리고 나서 나도 조금은 놀랐다. 게다가 답변하는 어투도 무척 밝고 명랑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평소에 생각을 깊이 했거나 그랬던 적이 최근에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런 적이 없어서 놀랐다. 아, 그렇구나. 작가가 안된 게 아니라 못 된 거군. 적어도 7~8년 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생기면 주저 없이 소설을 쓸 생각이다, 앞으로 소설을 쓸 거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이야기 자체가 화제가 되는 일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그런 말도 하게 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란, 소설가이고 신춘문예나 문예지, 문학공모전 등을 통해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친 작가(소설가)를 칭하는 말이다. 내가 들었던 마지막 소설 창작 수업이 3년 정도 전이었나? 그랬으니 그래도 소설을 쓰려던 노력을 했던 시기가 아주 먼 과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취업인터뷰에서 받은 뜻밖의 질문 덕분에 나는 이전에 써둔 소설 파일을 오랜만에 찾아내서 문서의 무덤에서 꺼내 올렸다. 그리고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 왜, 진작 그러지 않았는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을 알기 힘들 것 같았다.
브런치에는 내면의 이야기나 아픔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글 또는 책, 영화, 드라마 리뷰를 블로그에 올리듯이 올리는 것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에게 치유의 과정이자 다시 용기를 얻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주 조금씩,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지만 구독자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가는 걸 기쁜 마음으로 벅차게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나 역시 내면에 동일한 질문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겠다.
왜 소설 안 써?
그 답을 이제 다시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