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이 되는 기분
한 달 30일, 그중 심하면 절반인 2주, 좀 낫다 싶으면 열흘에서 일주일 정도 견디기 힘든 지독한 기간이 있다. 바로 PMS(Pre-menstrual syndrome) 월경 전 증후군이 나타나는 기간이다. 지독한 기간이라 부르는 이유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신체 증상으로는 요통, 복통, 어지러움 등이 있고 정신적 증상으로는 과민, 불안, 폭식, 짜증, 분노, 우울 등 온갖 증상들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거나 한꺼번에 나타나 괴롭힌다.
호르몬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인데 마치 한 마리 짐승이 되어 미쳐 날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자괴감까지 든다. 이렇게나 컨트롤이 안 되는 정신과 육체라니. 호르몬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에 대한 감상을 할 여유가 없다. 당장 미쳐 돌아가는 상태를 어쩌지 못하면 낭패를 보게 되는 건 뻔한 일이다.
대체 그 오랜 기간 나는 이 시기를 어떻게 꾸역꾸역 참고 지내온 것일까 싶을 정도로 한숨이 나온다. 그냥 다 생리 전에는 그런 거고, 사람 따라 다르고, 컨디션 따라 다른 거야. 아마도 그렇게 스스로 주문처럼 중얼거리면서 버티고 버텼던 것 같다. 물론 생리가 시작된 후 찾아오는 생리통은 논외다. 그건 또 다른 문제이고, 생리 전에 이런 고통의 산을 넘어야 한다.
지난번 약 처방을 받을 때 PMS를 고려해서 받아둔 폭세틴(프로작)을 미리 먹고 있었는데 막상 PMS가 다가오자 전혀 듣질 않는 상태다. 어제 오후 허기짐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몰려왔을 때 든 생각은 걸신이라도 몸에 들어온 것처럼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했고 중간에 커피와 빵으로 간식을 먹어서 다음 식사 때까지 그렇게 미치도록 배가 고플 상황이 아니었는데 식사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오로지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과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 비슷하게 되어버렸다.
한 달을 인생이라고 치면, 초경 이후의 삶 중 평균 절반에서 1/3 정도 되는 기간을 이렇게 미쳐 날뛰는 짐승을 안에 가둬두고 언제 우리가 풀릴지 몰라 불안한 상태로 살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맞는 약을 처방받아 이 끔찍한 PMS에서 벗어나고 싶다. 다른 약을 처방받아서 먹고 제발 그 약은 잘 듣기를 바라는 수밖에. 우스개 소리로 지난번 의사와 면담 때 이런 말을 했다.
생리를 더 이상 안 하게 되면 그동안 괴로웠던 증상이 정말 다 사라질지 모르겠네요. 만약 그렇다면 예민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제 안 하게 될 거 같고, 한 달을 온전히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희망적이에요.
물론, 자연스러운 폐경을 맞이한다면 그땐 또 갱년기로 괴롭겠지만, 하하.. 정말 끝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