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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Mar 13. 2024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의 삶

봄을 기다리며 

 휴직으로 시작해 퇴직으로 이어진 기간이 어느새 6개월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주면 딱 6개월이 된다. 쉬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던 시기를 지나, 구직을 다시 해야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조급하게 면접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경험을 지나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 방식의 씀씀이 버릇이 튀어나와 당황하다가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자꾸 취업 사이트 여기저기를 들락거리며 초조하게 맞는 포지션이 있을지 검색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날은 너무 여러 군데를 들쑤시고 다녀서 현타가 오는 날도 있었다. 


 빚이 한 푼도 없고, 책임져야 할 생명이 없으며(반려묘 셋 있음), 모아둔 돈이 2~3년 동안의 최저급여 수준보다 조금 많은 정도로 지낼 만큼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그놈의 세상 제일 맛없는 '~라면'은 아예 저리 치워두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더 나를 잘 돌보며 살 것인지 생각하는 게 효율적이다. 



 6개월에 접어들자 비로소 이 생활의 루틴에 안정감을 느낀다.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로 하루 일정과 루틴을 설계할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여전히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드는 일과를 보내고 있다. 성격 상 지루함이나, 심심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상당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온전히 내 삶을 이루는 하루를 스스로 설계하고, 변경하고, 기록하면서 지내는 이 기간이 참 소중하고 고마운 날들이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로 하루를 보내는 삶은 성인이 되고 거의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직 중에도 퇴근 이후, 주말에는 늘 뭔가를 배웠고, 투잡을 하기도 했다. 이직을 했을 때도 대부분 환승이직이었고, 짧은 프리랜서 기간에는 여러 일이 중첩되어 여유라는 게 없었으니 20여 년의 사회생활 기간 중 최초로 맞는 여유로운 능동태의 시기다!




 이전처럼 큰 걱정 없이 짬만 나면 어디로든 여행을 갈 여유는 사라졌지만, 여행의 범위를 재정의 하면 된다. 꼭 못 가본 어디 먼 곳을 다녀오는 것만 여행은 아니지 않나. 오래도록 살아온 서울이라는 도시 구석구석만 해도 여행할 곳은 많이 있다. '서울에 이런 곳이?' 하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는 아니어도 스스로 만족할만한 소소한 서울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후동행카드가 있으니 서울권역 안에서는 어딜 가든 한 달에 62,000원(따릉이 미포함)이면 커버가 되니 날이 좀 더 풀리면 나만의 소소한 서울여행도 계획해 볼 생각이다. 서울러지만 정작 다니는 곳만 다녀서 드넓은 서울에 대해 잘 모르는 곳 투성이다. 오죽하면 외국인이 올려주는 서울에 대한 영상을 보며 정보를 얻겠는가. 동네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동네의 유래까지 알려주는 고마운 유투버도 있다. 그렇게까지 일처럼 여행 콘텐츠를 만들 생각은 아니지만, 나를 위한 소소한 서울 여행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봄이 오는 것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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