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아아 실업급여
직장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들 중 실업급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운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는 것이 좋겠다. 실업급여를 신청할 일 없이 구직활동을 하며 환승 이직을 하거나 한 직장에 오래도록 다녀서 고용보험은 말 그대로 보험으로만 들어둔 사람이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도 실업급여 받아보고 싶다고 할 수는 있겠다. 권고사직 및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도 고용주의 미필적 고의 또는 실수에 의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 실업급여는 받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지 않아 최대한 빨리 구직을 해야 하지만 실업급여가 종료될 때까지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고용센터의 실업급여 창구에 방문한다.
실업급여과 창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니, 특이하다. 보통은 은행 창구에 복면강도가 총을 들고 들이닥치는데 <특이사항 보고서>는 실업급여과 창구에 복면강도가 총을 들고 들어선다. 돈을 노린 것은 아닌 게 분명하고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야 밝혀진다.
작가는 실업급여 창구의 직원이 코마 상태에 빠져 유체이탈을 하게 된다는 설정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고용센터를 찾는 이들과 창구에서 민원인들을 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눈물, 분노를 가진 민원인들과 공무원의 이름 아래 또 다른 을의 입장에 놓인 창구 직원의 모습이 드러난다.
안정된 고용 상태에 머물러 있기 위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묵묵히, 처절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자가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불공평함, 누군가가 놓은 덫에 걸린 애처로운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잡은 실업 급여라는 끈을 잡는 것 또한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어차피 인생도 기간제 아닌가요? 이백 년을 사는 것도 아니고 길어봐야 백 년. 그래봐야 모두 기간제 삶을 살고 있었다. 인생에는 죽음이라는 끝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이 해고장을 내밀면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종말을 향해 나아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실을 견딜 수 있었다. 평등한 종말이라는 대전제는 쓸쓸한 모든 상실을 포괄하는 멋진 변명이 되었다. 누구도 결코 종말을 피할 수는 없었고 창구에서 이 단순한 명제는 구체화되어 살아났다. - 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