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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구름 Apr 08. 2024

잘못된 단어






 띠지의 문구인 '왜 좌파마저 민주주의를 위협할까?' 때문에 집어 든 책이다. 그것에 공감이 가는 면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요즘의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과연 좌파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지 않는 걸 기본으로 두는 게 맞을까 싶기도 했다. 저자인 르네 피스터는 독일의 진보매체인 <슈피겔>의 워싱턴 지국 편집장이다. 


 <잘못된 단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못하는 현상에 대한 답답함,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에 집착하여 내부에서 분열하는 좌파에 대한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책에서 사례로 든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정말 그런 의미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큰 그림을 망치는 사례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는 것도 있다. 


 첫 번째 사례로 꼽은 '이안 부루마 사건'이 그러하다. <뉴욕리뷰오브북스>의 16개월 차 편집장이었던 이안 부루마는 그가 내린 어떤 판단으로 인해 인생에 큰 부침을 겪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재정적 추락이 아닌 수십 년 넘게 당연히 속해 있던 세상에서 내쳐진 기분이라고 하는 말에 공감이 가긴 한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타당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안 부르마가 고메시의 기사를 싣기로 결정하고 이 글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메시는 인기 있는 록스타이자 라디오 진행자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미투가 이어지면서 그는 자신이 진행하던 캐나다 공영방송에서 해고되었다. 이후 이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재판의 판결은 예상과 달리 무죄였다. 유죄를 입증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판단 기준이 되는 피해자의 진술의 일관성 부분에서 모순이 있다고 판단한 법원은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해당 건 이외에 다른 고소 건이 있었는데 이 건은 고메시가 공개사과를 하는 조건으로 합의하에 취하되었다.


 이런 고메시의 입장문(변명문 내지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논조의 글)을 이안 부루마가 <뉴욕리뷰오브북스>에 싣게 되고, 그런 결정을 한 이유가 도덕적으로는 잘못했을지 모르나 형식적으로는 무죄인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토론해 보자는 취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트위터에서 분노의 물결이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범죄자가 자신의 새 삶을 진술할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한 것이라는 해석이라 좀 갸우뚱했다. 


 고메시가 <뉴욕리뷰오브북스>에 실은 글은(분량 때문에 전문을 옮길 수는 없지만)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새 삶을 논한 게 아니라 억울한 일을 겪은 이의 한탄이었고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기에. 그런 입장문을 실으면서 불타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별다른 대응 방식이나 논거도 준비하지 않았던 편집장 이안 부르마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점점 정치적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중간은 없으며 좌우가 서로를 향해 분노의 칼끝을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생산적인 싸움(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깊이 공감한다. 혐오와 독단은 자유로운 토론의 적인 것은 맞지만 정당한 분노와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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