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훔치는 자
최근 일 때문에 알게 된 한 분이 사고를 당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차 중이었는데 덤프 트럭이 덮쳤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타고 있던 차는 거의 폐차를 해야 할 만큼 망가졌지만 그분은 거의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튼튼한 차였기 때문에 사람을 보호해서 다행이기도 했고 여러 모로 운이 좋기도 했겠지만 정작 본인은 너무 놀라서 아직도 무사히 살아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나 역시 몇 번의 사고를 당했다. 그중 가장 놀랐고, 후유증이 컸던 것은 뉴욕에서 중 겪은 교통사고였다. 귀국 전날 밤에 벌어진 일이었다. 귀가를 하던 중 정지신호를 받고 서 있었는데 잠시 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가 뒤로 밀리며 정신이 멍해졌다. 물론 안전벨트는 하고 있었다. 뒤에서 차를 들이받은 운전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한껏 취하지 않은 척 하며 번호를 적어준다고 하더니 쏜살같이 차에 도로 올라타서는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며 한 밤의 도로를 달려 도망쳤다. 주택가의 한적한 도로였고 CCTV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었고 손해배상이고 뭐고 어찌 할 겨를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돌아오고 그만이었다. 몇 달이 넘도록 꼬박 물리치료를 받으며 고생을 했다. 병원을 다니며 힘들었던 것은 물리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그 밤에 내가 겪은 충격과 공포와 불안이 뒤를 쫓는 것이었다. 그 차가 도망가면서 나를 또 들이받고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맨 처음 들이받았을 때 더 심하게 받았다면 이 정도 치료로 끝나지 않았겠지. 그 날 내가 타고 있던 차가 구닥다리 낡은 중고차 같은 거였다면 내 상태는 어땠을까 하는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맴돌며 혼을 빼놓았다. 차를 받고 달아난 그 음주운전자는 나의 내일을 없애버릴 수 있었다. 그 순간의 그는 내일을 노리는 자였다.
미루어 둔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하자.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생각은 최대한 하지 말자. 오늘 이후에 어떤 내일이라도 온다면 고맙다는 인사부터 하자. 이런 세 가지 생각을 불러 앉히자 비로소 내 뒤를 쫓던 불안이 조금이나마 잠잠해졌다. 해야만 하는 일은 최대한 미루더라도 하고 싶은 일은 최대한 당겨서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 안 해도 되는 일로 변할 가능성이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거리에는 수많은 내일 약탈자가 누군가의 내일을 노리고 있다. 스스로의 내일을 지키는 일이나 타인의 내일을 빼앗지 않으려는 일은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