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귀여운 판형의 책이다. 출판사의 센스가 돋보이는 사철 제본으로 만들어져서 아무 페이지나 마음껏 펴도 걱정 없다. <구의 증명>으로 한동안 뜨거웠고 그 밖의 다른 소설들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소설가 최진영의 에세이다. 은행나무 문학잡지 AXT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서 펴냈다.
천안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겨 살며 <단 한 사람>을 쓰는 집필 과정이 담겨 있지만 글 안에 장편 소설을 쓰는 과정이나 내용이 담긴 것은 아니고 오롯이 작가의 내면과 창작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타인이 진짜 나를 알면 도망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가득한 작가는 유기 불안이 꽤 있는 것 같고, 스스로를 증오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면도 있어서 작가 본인이 말한 것처럼 상담 치료 및 약물치료도 필요한 상태 같아 보였다. 이게 무슨 큰일이 났다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듯 쓴 게 아니라 정말 예전의 내 상태 및 현재의 내 상태랑 싱크로율이 70% 정도 되는 것 같아서 쓴다.
불안이 가득하고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에 웅크리고 있는 자아를 가진 나를 이제는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는 게 달라졌을 뿐 나머지는 거의 그대로다.
창작 강의, 특강을 하러 나의 모교에 다녀온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학생들에게 똑같이 글이 잘 안 써져서 괴로운 작가가 조언을 한다. 안 써지고 망하고 다 버릴 것 같은 글이라도 일단 쓰라고. 안 써져서 글을 정말 안 쓰다 보면 안 쓴 날이 늘어나는데 망하고 다 버릴 것 같은 글이라도 쓰고 나서 버리면 쓴 날이 늘어나는 거라는 식의 설명이었는데 정말 와닿았다.
망한 것 같아서, 안 써져서 연재소설을 아예 때려치운 나로서는 무척이나 뜨끔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이야기를 쓰고(구의 증명) 이런 걸 써도 괜찮은 걸까 이걸 사람들이 읽어줄까 고민하던 작가는 출간 이후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시간이 흘러 지금 돌아보니 어쩌면 지상의 많은 작가들이 발표 후 큰 사랑을 받게 될 작품을 쓰면서도 쓰는 당시에는 그렇게나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쓰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제주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곳에서 연인 다크니스와 살아가며 지낸 그 시간들을 옆에서 가만가만 조용히 방해되지 않게 지켜본 느낌이었다. 나는 바람이 너무 싫어서 제주에서 한 달이나 일 년이나 결코 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서 지켜보는 게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