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뒤에 숨은 어둠의 손

<댓글부대>의 소름 끼치는 여론몰이

by 보라구름

작년 한 해 소설가 장강명의 이름은 여러 차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많은 매체에서 그를 인터뷰했고 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도 그의 소설은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신경숙 작가를 비롯한 몇몇 유명 작가의 소설이 표절 사태로 엄청난 비난을 받은 뒤로 소설가 장강명이 없었다면 한국 소설은 더 철저히 외면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는 2015년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왜 제주 4.3 평화문학상을 수상한 것인지 그 성격이 맞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선정 이유를 보니 이해가 갔다. 폭력을 드러냄으로써 궁극적으로 평화를 소망하게 하는 4.3 평화정신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소설가 장강명은 11년 동안 신문사 기자로 지내면서 쌓은 취재력을 뒷받침해 마치 실제 벌어진 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담아 순식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도록 몰아 부치는 힘이 있는 작품을 내놨다.


작가 후기에 이 작품의 모티프는 2012 대선 당시 국정원의 여론 조작 의혹사건이라고 밝혀져 있다. 작가 역시 의혹 내용을 믿지 않았는데 뒤늦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인터넷 카페, 블로그와 각종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소설의 댓글부대 공작이 소름 끼치게 다가올 것이다. 단순히 댓글 알바라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여론몰이와 공작, 커뮤니티 파괴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제부터 작품 내용을 다루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 중 결말을 알기 원치 않으시면 읽기를 중단해 주시길)


셋이 팀을 이뤄 누군지 알 수 없는 돈줄로부터 지시를 받아 일을 처리하는 댓글부대. 그들은 지시한 일을 수행한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받지만 중고 외제차를 사고 성매매에 돈을 뿌리고 다니면서 그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착각한다. 실상은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받고 돈을 좇아 일하면서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하게 된 건 일을 지시하는 사람이 하는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주장을 들으며 그것에 동화된 나머지 마치 스스로 생각해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을 동화시킨 사람도 윗선의 하청을 받은 사람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것처럼 들린다. 한두 사람의 힘으로 그런 결과가 생긴다고 믿게 되면 그건 마약처럼 그들을 파고들고도 남는다. 그쯤 되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이미 안중에도 없고 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존재에 격한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그럴싸해 보이는 주장으로 선전, 선동을 잘 하는 사람들은 사이비교주가 되거나 정치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상대를 완벽하게 자기편으로 만들고 심지어 상대의 가치관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심어놓고도 그런 것을 자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술을 발휘하는 것이 댓글부대에게 하청을 주는 윗선이다. 댓글부대가 우쭐대며 자신의 전술을 특정 다수 때로는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에게 써먹으며 낄낄 거릴 때 그들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히죽거리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댓글부대가 역할을 잘 수행하면 돈을 쥐어주며 더 확실하게 노예로 만들어 부리다가 적당한 때가 오면 제거해버리고 만다.


댓글부대가 현실에서 맺는 인간관계라고는 그들 셋과 하청을 내리는 윗선 사람들과 풀싸롱, 단란주점 보도방 여자 종업원뿐이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없는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는 돈으로 맺을 수 있는 관계 이외에는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댓글부대가 이런 노예로 그려졌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댓글부대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처지가 아닐까 싶다. 나에게 돈을 지불하는 자의 업무 지시에 충실하게 따른다. 그들은 회사의 상사이자 회사 자체이며 때로는 고객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찾은 존재가치와 의미 따위는 잊은 지 오래다. 자본의 흐름에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것을 유연성이자 기민함이라 여기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만이 최대의 목표가 된 것에 어떤 거부감이나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경제만 살아나면, 나라 살림만 좋아지면 오만가지 패악쯤이야 눈 감아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되려 핏대를 세우는 경우가 흔하다. 가난한 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핏대를 세우고 부유한 자는 부를 지키기 위해 핏대를 세울 뿐이다. 이유는 같다. 돈이다. 윗선에서 하청에 하청을 주고 댓글부대를 고용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겉으로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 장황설을 늘어놓지만 그들은 가진 돈을 이용해 더 든든한 울타리를 치려고 할 뿐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영화 <내부자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남자들이 모여 앉아 죄다 성기를 내놓고 성매매를 해서 전라의 여자들 질펀하게 욕구를 채우고 다시 앉아 회의를 하는 모습이 댓글부대에도 여러 차례 나온다. 국정원이라고 짐작되지만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 역시 윗선의 하청을 받아 댓글부대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것이 다를 뿐 그들도 돈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푸는 것 외에는 욕구를 충족할 줄 모르는 인간들일뿐이다. 시키는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받고 그 돈으로 성욕과 지배욕 해소를 반복적으로 하며 살아가는 삶.


그들은 풀싸롱에서 서로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다음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간다. 힙합 전문 연예기획사를 차리고 젊은 애들을 끌어모아 아티스트 대접해줘 가면서 넌지시 찔러준다. 사회를 비판하라. 단, 할아버지 세대를 비판할 건 없고 너희 부모님 세대, 386세대를 비판해라. 이렇게 소설 속 댓글부대의 다음 대중선동 목표가 주어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어차피 소설이니까 뭐, 소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데 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덮기에는 껄끄러움이 남는다.

이제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이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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