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랍고 말랑한
내가 고양이와 처음 함께 살게 되었던 때는 마당과 지하실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느 날 크게 다친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지하실로 숨어들었다. 짐 정리를 하기 위해 지하실에 내려가셨던 엄마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불을 켜서 살펴봤지만 찾기 힘들어서 문을 조금 열어두고 다시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가보니 여전히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새끼라도 낳으려고 숨어든 것인가 싶었지만 울음소리가 애처로워서 결국 손전등까지 동원해 지하칠 구석구석을 살피고서야 겨우 울음소리의 주인공인 녀석을 찾으셨다. 어른들은 고양이를 보고 나비라고 부르시곤 했는데 큰 소리로 나비야 나비야를 연달아 외친 덕이었다.
그런데 찾자마자 놀라서 뒤로 넘어지실 뻔했다.
놀랍게도 고양이의 목이 상당 부분 잘린 상태였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생선 손질이나 닭, 고기 손질 등을 척척 잘 해내는 프로 주부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니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하시고 겨우 해내는 그런 분이신데 얼마나 놀랐을까. 하지만 엄마는 놀란 마음을 곧 추스르고 이 녀석을 살리기 위해 혼자 힘으로 다친 녀석을 무사히 들통에 담으셨다고 했다.(우리 집에 이동장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달리다시피 가셨는데 의사도 보고 놀라서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더라는 것이다. 엄마는 그래도 잘 좀 치료해달라고 부탁하셨고 결국 수술 끝에 녀석은 다시 들통에 담겨 지하실로 돌아왔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그렇게 크게 다쳤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녀석은 엄마가 주는 약(소시지에 약 가루를 발라서 먹이심)을 꼬박꼬박 먹고 어느새 회복을 하고 제대로 된 야옹 소리를 내주었다. 우리 집 나비로서 낸 건강한 첫 목소리였다.
그 후로 나비는 지하실, 마당, 옥상, 우리 집 거실과 안방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내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아는지 눈을 떠보면 항상 이불 끝에 다소곳이 앉아서 나를 보고 아침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인사성 바르게 아침마다 문안인사드리러 온다며 까르르 웃었다.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이리저리 뒹굴뒹굴 몸을 굴리면 재밌다고 옆에서 까르르 웃었다. 옥상에서 내려올 때면 내가 먼저 내려가기를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내가 계단을 다 내려오고 나면 쏜살같이 빠르고 능숙하게 계단을 내려오곤 했다. 나비는 늘 내게 웃음을 주는 존재이자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 후로 고양이들과의 인연이 여럿 있었고 지금도 두 마리의 사랑스러운 냥이 들과 함께 하고 있다. 고양이와 관련된 책이라면 제법 찾아 읽고 행복해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지금까지의 고양이 책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할 수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고양이와 할아버지>다.
네코 마키 작가의 만화인 <고양이와 할아버지>는 2권으로 발행된 책인데 페이지 하나 넘기는 게 아까울 만큼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고 때로는 미소가 지어지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할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추억하면서 고양이 타마와 함께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인데 어느 한 장면에서 나는 그만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연로한 할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져서 잠시 기절을 하게 되는 상황이 왔는데 그 순간 이렇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제일 먼저 한 생각은 타마, 타마는 어쩌지! 만약 집에 문이 다 닫혀있다면 고양이는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 그저 갇혀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타마도.. 안돼! 할아버지가 필사적으로 창문을, 문을 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내가 아닌 타인의 존재를 배려하고 아끼는 그 모습에 뭉클한 사랑이 느껴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하철 안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이 책을 읽은 지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묘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부분을 지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각의 감동을 나누어 갖는 것 같았다.
책의 여운이 길게 남아 있던 차에 마침 캘린더도 출시되었다고 해서 덥석 구매해서 방에 걸어 두었다.
1년 내내 뭉클한 사랑을 펼쳐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안녕, 타마! 안녕, 할아버지!!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중에도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를 마다하고 굳이 테이블 아래 배를 깔고 털썩 누워 나와 함께 있어주는 사랑스러운 고양이 레오가 보인다. 오래오래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