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좀 어때
일하는 곳 바로 앞에 대형 서점이 있어 종종 들르곤 한다.
그날도 어슬렁거리며 책이 놓인 매대 앞을 훑고 있었다.
조금은 촌스러운듯한 표지, 아이슬란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책날개를 넘겼다.
세상에, 32곳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원고라니!
무심결에 나는 책의 두께를 손으로 가늠해보았다.
굉장히 두꺼웠다.
하, 이렇게 정성 들인 원고를 저 많은 곳에서 거절당하고 얼마나 속상했을까.
저자 소개를 읽고, 본문을 몇 페이지 넘겨보았다.
사실 나는 캠핑에 관심이 없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수준도 남들보다 낮은 편이다.
그런 내가 이 여행기에 끌린 것은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
10년의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끝이 났고
글을 써보겠다고 늦은 나이에 문예 창작과에 입학해 열정을 불태웠지만
오랜 시간 작가 지망생으로 남아 매해 신춘문예에 낙방했던 저자.
어느 날 노안 때문에 돋보기안경을 써야 하는 순간이 오자
인생을 실패한 것 같은 두려움에 절망을 느꼈던 저자의 이야기.
물론, 읽다 보니 한여름 무더위에서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자연 속 추위로 조금 시원함을 느끼게 된 것도 있긴 하지만.
50대의 여성이(정확한 나이는 아니지만 대략;)
히치하이킹을 하며 배낭을 메고 캠핑을 하며 아이슬란드를 71일 동안 여행하다니
그것만으로도 너무 놀라웠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출판사들은 이 원고를 거절했을까.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신춘문예에 투고하던 저자의 글 솜씨로 보아
원고 퀄리티가 떨어져서는 절대 아닌 것 같고
이유는 한 가지, 프로필의 매력 즉 간판이 멋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본다.
사실 매일 쏟아지는 신간을 보면 대체 이런 원고로 책을 낼 배짱은 어디서 나오나 싶은
그런 책도 더러 있는데 저자 소개를 보면 으흥, 하고 콧방귀를 뀌게 된다.
난 이런 사람이거든 하는 뉘앙스의 구구절절 이력서 및 경력 소개서 같은 프로필이
번쩍거리며 뽐을 내고 있기 때문에.
아무튼, 그런 간판을 내세우고자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다지 매력이 없을 저자의 프로필.
성과주의 한국 사회, 실패자의 낙인을 찍으면 영영 재기하기 힘든 사회라는 게
저자의 출간 준비 중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여전히 나는 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낯선 땅에서 발톱이 빠져 다리를 절며
엉금엉금 기어가다시피 산을 오르고 텐트가 날아갈까 걱정하며 잠들고
식사는 생존을 위해 때우는 정도로 먹으면서 고난의 여행을 한 것인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
결국 그 긴 여행 끝에 자신의 인생이 실패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따뜻한 박수를 오래오래 보냈다. 더불어 나에게도.
여행의 마지막 즈음 저자는 한 할머니에게 이유 모를 심경고백을 한다.
결혼 실패, 꿈 실패, 사랑 실패..
거기에 돌아온 아이슬란드 할머니의 대답은 이렇다.
당신은 쓰고 싶은 글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당신이 인생을 다 실패했다니, 난 당신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겐 사는 게 뭐죠?
사실, 최근 들어 나 역시 내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 아닌가 스멀스멀 의구심이 들어 애써 모른 체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하면서.
71일간의 아이슬란드 배낭여행을 다녀오지는 못했지만 저자 덕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패? 글쎄. 실패하면 또 어때.
실패를 해야 뭐든 다시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어.
그리고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도전도 안 하고 실패라고 스스로 접어버린 일이 더 많다는 것.
실패하면 어때!
* 저자의 팟캐스트(강 누나의 깡 여행)를 찾아들어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원고 속 이미지로 상상한 저자는 조금 털털한 이미지였는데
목소리가 아나운서급으로 곱고도 낭랑하였다~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저자 강은경
출판 어떤 책
발매 2017.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