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에 저항하기

동력을 비축할 것

by 보라구름

무기력 때문에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 괴로워하던 나날이 길었다. 항상 바쁘고 뭔가를 계획하는 나의 외적인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만큼.


우울과 무기력의 상관관계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두 개가 꼬리를 물고 돌아가기 시작하면 늪에 빠져드는 느낌으로 푹 꺼져 들어가며 숨이 막힌다. 무기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날에는 일어난 상태에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자는 것도 아닌 굉장히 짜증스러운 상태가 지속된다.


worried-girl-413690_1920.jpg


계획을 세웠다가 다시 엎어버리는 일을 반복하거나 그런 상황에 놓인 나 자신을 자학하는 것을 반복하며 결국 현관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채 하루를 다 보내버리곤 한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잽싸게 욕실로 향하는 게 나름의 저항이자 전략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일단 씻고 외출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씻는 동안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된다. 잡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씻는 행위에 몰두하면서 찾게 되는 심리적인 안정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향의 바디워시, 스크럽제를 사용하고 평소보다 조금 공들여 길게 샤워를 하거나 시간에 쫓겨하지 못했던 헤어 케어 등을 하면서 욕실에서 가능한 오래 머문다. 그러다 보면 바닥에 가라앉았던 동력이 조금씩이나마 생겨난다. 씻고 나서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기초 제품을 바르면서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간이다. 자칫하다가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면서 다시 무력감에 빠지기 때문이다.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도 쇼핑을 할 의욕까지는 생겨날 때가 있다. 문제는 쇼핑을 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쇼핑 이후의 행위까지 다 했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책을 구입만 하고 읽지 않거나(못하거나) 각종 뷰티 제품(팩, 케어 제품)을 사고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그밖에 사용할 목적으로 구입해 놓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진다. 구입을 함으로써 이미 사용의 목적까지 충족해버렸다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돌아서버리는 셈이다.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 감과 동시에 자기혐오가 싹트는 악순환이다.


미련하다, 게으르다, 한심하다는 기본이고 온갖 욕을 스스로에게 퍼부어대며 저주를 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나면 처음이 무기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기력으로 다시 빨려 들어간다. 그 정도가 되면 혼자 있는 시간이 공포로 다가온다. 어떻게든 스스로와 마주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푸로작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비난하고 몰아세우는 정도가 약해졌고 빈도수도 줄어들었다. 무기력에 대한 대처도 훨씬 능동적으로 변했다. 한 가지 스멀스멀 걱정의 기운이 밀려오는 것은 이러다 평생 약을 먹고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다.



이전 07화울며 시작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