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범주

지인과 친구 사이

by 보라구름

우울과 무기력증 때문에 대인기피증도 생겨나서 원래 넓고 얇았던 인간관계가 좁고 얇아지다 못해 거의 소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의 카테고리에 남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지인의 카테고리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 지인의 카테고리에서도 언발란스한 관계 투성이로 남는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는 그 지인이 주연급인데 상대방의 경우는 내가 엑스트라급인 경우는 관계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아가고 있다. 특히 말로는 내가 자신의 주연급이라고 하면서 행동을 보면 엑스트라급(그마저도 군중씬에서 실루엣만 보이는)에 해당하는 걸 보며 나도 상대를 멀리 밀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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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알아차리거나 못 알아차리거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소멸되는 것 같다. 연락의 횟수가 줄어들고,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가 매번 비슷해지거나 집에서 술 한잔 하면서 음악 대신 텔레비전의 예능, 영화 등을 틀어놓고 이야기를 대신하게 되면 머지않아 결국 소원한 관계가 되는 것 같다.


돌아보면 상대방은 내 불행을 동정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감사히 여기고, 내게 호의를 베풀며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면서 그런 용도로 나를 만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 때 나에게 도움이 되어 주고, 참 고마운 사람이라 생각했다가 돌연 소름이 돋았던 건 관계에서 빠져나와 숲을 보게 되면서였다.


모든 관계가 서로 대등할 수는 없다. 가족과 친구 지인, 사회적 관계에서는 대놓고 또는 은밀하게 서열이 생긴다. 그것을 서로가 자연스럽게 납득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서열을 바꿔가면서 건강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지만 대체로 모든 관계가 그러하다.


의존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불행과 고통을 내 안위에 대한 감사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에게 건강하게 의지하고 손을 내미는 그런 관계는 한두 사람이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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