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냥 밥 먹은 건데요.
그의 자작 영문 시를 카톡으로 받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그가 나를 위한 시를 써서 보내리란 생각을 전혀 못했다. Never!
그는 나를 여자로 보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나는 그보다 십 년이나 늙었고, 이혼녀에 8살 남자아이까지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지 않나. 진짜 그를 남자로 상상하는 망상은 0.01%도 없었다. 그저 먼 나라 미국에서 홀로 한국에 와 적응하는 상황이 안쓰러워 정이 갔을 뿐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냐는 그의 물음에 흔쾌히 응한 건 저녁 먹을 친구가 많지 않겠다 싶어서였다.
나의 친절이 과했구나! 내가 오해 살 행동을 했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만나면 늘 영어단어 떠올리기 바빠서 기억을 짜내도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저녁 같이 먹자고 몇 번 만난 것뿐인데...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를 미국인 친구라고 생각했지 이성적인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나를 보라고. 나는 결혼에 실패한 나이 많은 싱글맘일 뿐. 나의 호의가 그를 오해하게 만들었나?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그에게 분명히 알려야 했다.
" I like you but we are just friend! "
그는 요 며칠 단둘이 저녁을 먹으며 데이트하지 않았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아 그게 데이트였어? 데이트할래? 네가 그렇게 물은 적 없었는데... 밥 같이 먹었다고 데이트한 거야?"
나는 깜짝 놀랐다.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녁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 친한 동생들, 친구들, 업무상으로든 나는 사람들과 편하게 저녁을 같이 먹어. 저녁 같이 먹으면 데이트한 거야? 아닌데. 한국은 누구하고 든 편하게 저녁 같이 먹는데. 미국에서는 둘이 밥 먹으면 데이트하는 건가 봐?"
그는 눈이 참 크고 예뻤다. 나의 주절거리며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그의 아름다운 큰 눈이 점점 더 커지다가 이내 실망한 듯 눈동자가 흔들리고 닫혀 버렸다. 크게 시무룩해진 그에게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디 상상이라도 해봤냐고! 전혀 안 했지. 말도 안 되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이 상황을 부정했다.
황당하다는 듯 더없이 순수한 눈을 한 그에게 쏘아붙였다.
"말도 안 되잖아. 20대 미국 청년이 무슨 30대 싱글맘한테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생각했겠냐고! 나이 차이도 차이지만 상황이 너무 다르잖아."
그는 이제껏 다물고 있던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