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그리니까 그곳이 보인다 2 - 인천 미추홀구 아리벽화마을 어반스케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그릴래요?”
내가 태어나기 전에 개봉했던 먼 옛날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포스터가 그려진 골목 안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내게 다가왔다. 조금 전에 내 곁을 지나갔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골목 안 어느 집에 사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추운데 길에서 그림을 그리시네?”라고 의아해 하며 바삐 걸어갔다가 이내 돌아와 그렇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전날보다 기온이 10도 이상 뚝 떨어진 쌀쌀해진 날씨에 누군가 장시간 바깥에 오래 앉아있는 게 마음에 못내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즈음 나는 맞은편 골목길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으며 머릿속으로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말의 의미를 괜스레 곱씹고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영화여서 살면서 숱하게 타이틀을 들었는데도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말을 접하면 내 머릿속엔 미워서, 싫어서, 혹은 이유도 모른채 멀어진 옛 인연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한때는 살갑고 다정했던 인연이었지만 이제 더는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고, 오늘 같은 날 그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나누며 유쾌한 이야기꽃을 피웠을텐데 어쩌다 참 좋았던 인연들이 멀어졌는지 싶어져 쓸쓸한 마음이 일렁였다.
그래서인지 낯선 방문객에게 다정한 환대의 말을 건네는 마을주민의 등장이 더 큰 울림의 서프라이즈 선물로 다가왔다. 이런 경우, 웬만하면 말씀만으로 감사하다고 사양하겠지만 그때는 누군가의 온기를 나눠받고 싶었기에 감사히 잘 마시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따뜻한 김을 모락모락 피어올리는 머그잔을 가져와서 베트남 커피에 꿀을 탔다고, 별로 깔끔하지도 않은데 우리 마을 예쁘게 그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어반스케치를 다니다보면 마을주민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여기가 뭐 볼 게 있냐고, 대체 어디가 좋아서 그림을 그리냐고 내게 묻는다. 그럴 땐 나는 일부러 펄쩍 뛰며 “어머나! 여기 동네가 얼마나 예쁘고 멋진데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날도 아주머니에게 날마다 여기 골목을 오가는 마을주민이 보기엔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풍경이겠지만, 외부인의 눈에는 다른 마을에서 보거나 느낄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적인 멋이 있다고, 그래서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와서 그리게 된 거라고 대답했다. 그런 내 반응에, 정말 그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골목길을 찬찬히 바라보던 아주머니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언뜻 흐뭇함 같은 걸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날 인천 미추홀구 아리벽화마을 골목길을 찾아가게 된 건, 어반스케치 단톡방에 올린 어느 멤버의 사진들 때문이었다. 가파란 경사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위로 햇볕이 유난히 환하게 쏟아지는 마을풍경이 인상적이었는데,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가 집집마다 대문 앞에 내어둔, 붉고 노랗고 푸르른 화분들과, 오래된 골목길과 어울리는 옛 정취 가득한 알록달록한 벽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어딜 가나 벽화로 단장한 마을이 넘치도록 많은데, 그 마을과 벽화의 아이템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겉도는 느낌이 드는 데가 많다. 단지 낡고 오래된 마을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미기 위함 말고는, 마을과 벽화와 연관성을 찾기가 어려워서 왜 여기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나 갸우뚱하게 만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아리마을의 담벼락을 수놓은 벽화는 조금 차별성이 있었다고 할까?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옛날 영화 포스터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철수와 영희 캐릭터, 군고구마 장수와 동네꼬마 무리, 한때 전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상품 광고 이미지컷 등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런 옛 정취 가득한 벽화와 소박하고 아담한 집과 대문마다 내어놓은 싱그러운 꽃화분이 한데 어우러져 유난히 살갑고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언제 저기 골목길에 한동안 앉아서 볕을 쬐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일 한낮에 어반스케치를 잘 나오지 않는 편인데도 아리마을을 찾아오게 됐다.
나중에 찾아본 마을 관련 정보에 따르면, 아리마을은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모여살던 동네였는데, 실향민들끼리 잠시 모여 살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마음이 쓰리고 아려 주민들은 수년전 미추홀구청의 통두레 사업참여 때 마을 이름을 ‘아리마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그런 아픈 사연이 고여있는 마을이고, 아직도 예전 그때의 마을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담벼락에 그려진 1950년, 60년대 포스터와 생활상이 담긴 벽화가 마을과 한데 어우러져 옛 흥취과 감흥을 돋우는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그림을 그리는데, 아주머니가 골목 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점심 안 먹었을텐데, 이거라도 먹고 그려요.”
이번엔 아주머니가 가져온 접시 위에 백설기 한 덩이가 훈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반스케치를 다니다 보면 마을주민 분이 커피나 음료수를 주시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낯선 방문객에 불과한 이의 끼니까지 걱정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사실 그때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던 오후였는데, 그림을 완성하지 않은 채 식사하고 오면 그때까지 그리던 그림의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어서 점점 선명해지는 허기를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내 마음을 아주머니가 읽기라고 한 듯 배고픔을 채워줄 뜨뜻하고 든든한 음식을 가져와서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가슴 어딘가 뭉근하게 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림을 거의 다 그렸을 무렵에 아주머니가 다시 나타나셨다.
“내가 지금 외출해야 하거든요. 방금 고구마 쪘어요. 속 든든하게, 따뜻하게 해서 그림 그리다 가요.”
내게 갓 쪄서 뜨끈뜨끈한 고구마 꾸러미를 안겨주고 아주머니는 골목 밖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나는 너무 놀라고 감동하여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줄 몰라서 멍하기만 했다. 세상에, 처음 만난 낯선 이를 이토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지, 내 좁디좁은 소견과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아서 정서적 충격을 먹은 상태라고 할까. 얼어붙은 듯 서있다가 뒤늦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허리가 90도로 숙여졌다. 그건 감사함을 넘어서 존경한다는 의미까지 포함된 몸짓이었다.
그렇게 아주머니가 헤어진 후 내 안에서는 한가지 질문이 떠올랐고, 그 질문은 여태까지 내 안에서 출렁인다. 나는 아주머니처럼 마을을 잠깐 방문한 낯선 이가 혹시나 추울까봐, 배고플까봐, 하던 일 잘 끝내고 갈 수 있을까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미 나도 제법 나이 먹은 중년이지만, 아주머니처럼 품넓은 어른다운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먼 삭막한 사람으로 나이 먹어가고 있는 듯해서 퍽 부끄러웠다. 그렇게 아주머니가 낯선 방문객인 베풀어준 세 번의 따뜻한 환대는, 내게 한 가지 큰 뜻깊은 선물을 안겨다줬다.
나도 낯선 이에게 따뜻하고 품 넓은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해보는 시간 또한 내 앞에 선물처럼 놓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