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무의도 나들이
나 홀로 무의도로 떠난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었지만, 평소보다 고요하고 한적한 하루였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가족 말고는 없었기에, 폰 알림음이 울릴 일도 없었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자기와 친구 해줘서 고맙다는 뭉클한 메시지가 담긴 축하카드를 전하던 이들은 언젠가부터 더는 친구도, 지인도 아니게 됐으므로 어떤 축하든 기대할 게 없었다. 적막하긴 했지만, 쓸쓸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지나온 해의 생일 풍경도 대체로 비슷비슷했기에, 고독하거나 외로운 기분도 고만고만했다.
오롯이 혼자서 보낼 하루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이제부터 할 일이 뭔지 명확했다. 내가 생일을 자축하는 것. 어떻게 자축하면 근사한 생일이 될까, 그 또한 명확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
그날 한낮에 동인천역 근처 정류장에서 하루에 세 번 운행하는 무의도행 버스를 탔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 운전사와 승객들이 티 나지 않게 나를 주시하는 느낌이었다. 운전사와 승객 모두 장노년 어르신 나이로 보였는데, 내가 뒷좌석에 자리잡은 얼마 후 그들 모두가 마을 이웃이라는 사실을 그들의 격의없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버스 출발 전 짬나는 동안, 누군가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를 구워와서 그걸 나눠 먹던 상황 같았다. 평일 한낮엔 섬으로 들어가는 관광객은 거의 없는 터라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이 같은 버스를 함께 타고 다니던 작은 동아리 같은 곳에 낯선 방문객이 끼어든 모양새여서 잠시 이목을 끌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내리려고 했던 목적지 즈음에 이르자 대부분이 하차해서 남은 승객은 어느 할머니와 나뿐이었다. 할머니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힐끗 보고는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내가 종점인 광명항에서 내려서 소무의도로 들어갈 거라고 대답했더니 할머니는 그때부터 무의도에서 산 50년 세월을 이야기했다. 내가 관광객이라는 걸 확인한 할머니 나름의 환대와 친절이 아닐까 싶었다. 흔들리고 소음으로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열심히 들으며 신기하고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 온통 흙밭이었어요. 세상에, 길이 어딨어요. 지금은 도로가 있고 차가 다니는 편한 세상이 됐지만, 그때는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뭐가 있었겠어요? 인천까지 가려면, 아니 학교도 매일 뻘밭을 몇 시간씩 걸어서 왔다 갔다 했지요. 우리 애들도 그러고 다녀서 다리가 땡글땡글했고요. 2011년에 박승숙이 구청장이었을 때, 다리를 놔줘서 소무의도에서 무의도로 걸어다니게 됐지, 그전에는 나룻배 타고 다녀야 했지. 진짜 개고생하면서 살았어요……”
차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과거 뗏목이 많아서 ‘떼무리’라고도 불리는 소무의도에 얽힌 옛이야기를 한가득 들려주던 할머니는 나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저기 마을 아래 바다가 좋다고 거기 가보라고, 재미난 여행 되라는 다정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마을주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행운이다.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온 이가 두루 겪고 깊게 느끼고 단단하게 기억하는 마을 변천사를 들을 수 있는 건 크나큰 행운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접할 수 없는, 귀한 정보이자 살아있는 증언을 건네받은 거다.
이번 나 홀로 여행은 출발부터 유쾌한 행운이 있어서 예감이 좋았다. 버스에서 내리고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다. 쉽게 들뜬 마음 때문인지 어이없는 가벼운 사고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추천했던 대로 인도교를 건너서 마을을 통과해 몽여해변으로 향했다. 주말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한적하고 조용해서 걷기 좋은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빛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붉은 계열의 지붕을 이고 있는 옛집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인천공항이 가까운 곳이기에 어느 하늘 모퉁이에서 비행기가 하얀 구름처럼 푸른 바다 위로 날아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오늘 어반스케치를 한다면, 여기 소무의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담아야겠다 싶었다.
곧이어 몽여해변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인천대교로 바다 건너 영종도로, 영종도에서 무의대교로 또 바다 건너 무의도로, 무의도에서 인도교로 역시 바다 건너 소무의도로, 그렇게 바다를 세 번이나 건너서 도착한 섬바다여서 그런지 물빛이 더 맑고 환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바다 윤슬이 햇빛을 반짝반짝 튕겨내고 있었는데, 그건 뭐랄까. 어떤 이야기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신나게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의 야유회 장면처럼 보였다. 그곳은 모래해변이 아닌, 자갈이 펼쳐진 해변이어서 파도에 구르는 자갈 소리를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상상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마을 구경과 해변 산책을 이만큼 했으니 이제 슬슬 그림 그릴 준비에 돌입해야겠다 싶었다. 그림 그리는 동안,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속을 데워줄 따끈하고 달달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면 좋겠다 싶었다. 해변 근처의 소무의도여행자센터 카페에서 라떼 한 잔을 주문해서 받았다. 푸른 바다와 정겨운 마을 풍경을 하나의 스케치북에 담으려니 마음이 들떴다. 의욕이 앞선 탓이었을까?
어느 순간, 나는 시멘트 바닥에 고스란히 넘어져 있었다. 방금 받은 커피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길바닥에 쏟아졌다. 카페에서 거리로 내려가는 옆 계단 턱을 미처 보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였다. 처음엔 너무 놀라고 당혹스러워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양 무릎이 쓰리고, 커피를 쥔 오른손이 바닥과 부딪쳤는지 손목이 얼얼해졌다. 가슴도 그때야 쿵쿵 요란하게 뛰며 적잖이 놀랐다는 표현했다.
일단 어디에 앉아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다친 데가 어딨는지 살펴야 할 것 같았다. 카페로 돌아가서 의자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카페 주인분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는 내게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와서 일단 옷에 묻은 흙부터 닦으라고 했다. 그러고 잠시 후에 새로 따끈한 라떼를 내어왔다. 내가 계산을 하려고 했지만, 한사코 만류했다. 다친 데가 어여 괜찮아졌으면 좋겠다고, 다음에 또 카페에 놀러 오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어이없는 부주의로 넘어져서 여기저기 쓰라리고 아팠지만, 고마운 마음 덕분에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또 한 번의 마을 분의 친절과 호의에 감동했다. 카페 문을 나설 때까지 수차례 감사함을 표하고는, 바다와 마을을 하나의 장면으로 담을 수 있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향하는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어디선가 누군가 가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힘차고 무게 있는 중년여성의 목소리였는데, 자주 들어서 귀에 익었지만 곡목이 뭔지 흐릿했다. 바로 앞 담장 너머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여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순간, 내 앞에 펼쳐진 예상지 못한 광경에 적이 놀랐다. 가운데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서 있고, 그 둘에게 고풍스럽고 정갈한 한옥이 서 있었는데, 마당에서 중년여성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랫소리가 예사롭지 않아서 무슨 무대라도 차려진 행사인가 싶었는데, 친구들끼리 조촐하게 둘러앉아서 그녀의 노래에 흐뭇하게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짧은 찰나지만, 가슴에 부러운 감정이 출렁였다. 생일날, 다정한 친구 없이 혼자 떠돌아다니는 내 처지가 가슴을 쳤다. 내가 근처에 서성이며 멋진 나무와 한옥을 둘러보고 있자, 마당 안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언니도 이리 와요. 들어와서 구경해도 돼요. 노래도 듣고요.”
그러잖아도 한옥 내부는 어떤지 궁금하던 차여서 냉큼 들어섰다. 따사로운 오후의 주홍빛 햇볕이 실내에 비춰들며 나무와 창호지와 패브릭 등 자연 친화적인 인테리어에 아늑함과 운치를 더해줬다. 알고 보니까 거기는 펜션이었고, 내게 들어오라고 한 이는 운영자였다. 운영자인 중년여성은 자기 폰에 담긴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너무 낡아서 곧 쓰러질 것 같이 구옥을 매입하여 지금의 한옥으로 탈바꿈시켰다고, 옛집을 새집으로 짓느라 육지에서 섬으로 건축자재를 실어나르기까지 했던 고생담을 들려줬다. 노래를 부르던 중년여성의 그룹도 나처럼 한옥 내부가 궁금해서 잠시 들른 구경꾼이었다. 운영자가 내게 섬에 혼자 왔냐고, 무얼 하러 왔냐고 묻길래 그림 그리러 왔다고 했더니 다음에 우리집도 그려주세요, 라고 유쾌하게 부탁했다. 나도 “잘 그리진 못하지만, 다음에 어떻게 해볼게요.”라고 웃음으로 화답했다. 복잡한 구조의 한옥과 멋스러운 나무를 어반스케치로 담으려면 아무래도 긴 여유 시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거기 풍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처음 눈여겨봤던 푸른 바다와 붉은 지붕의 옛집을 함께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을 언덕의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골목길 가장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길이 섬마을의 주요통로인지 무슨 그날 짧은 여행을 요약정리하듯이 그날 잠시 스쳤던 이들,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 대부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마을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던 어느 두 여성 관광객은 펜스케치 정도까지 그린 상태인데도 손뼉까지 쳐주면서 “저기 아랫마을 풍경이랑 여기 그림이랑 똑같아요. 진짜 좋네요, 그림이!“라고 기운을 불어넣어 줬다. 시간이 흘러서 채색을 마칠 때 즈음에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도 내 곁에 발걸음을 멈춰서서는 “이제 채색까지 거의 마쳤네요.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비포 애프터를 보여주는군요!”라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한옥 펜션 운영자도,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년여성도 만났는데 내가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이, 그녀가 내 그림을 보면서 했던 말도 매우 흡사해서 적이 놀랐다.
“사람은 정말 그래요, 다들 저마다의 달란트가 있네요.”
내가 골목에 앉아서 한두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장 다정했던 이들은 섬 고양이들이었다. 어떤 고양이는 자기랑 놀아달라는 듯 내 주변을 빙빙 돌거나 나를 지켜주기라도 하는 듯 내 곁에서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마침내 그림을 그리고 인도교로 돌아갈 즈음에는, 그날 만났던 고양이 거의 모두가 바닷가 선착장에 옹기종기 모여서 떠나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다고, 다음에도 우리 섬에 꼭 놀러오라고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듯이.
광명항에서 인천공항 지하철 행 버스에 올랐다. 차창 너머 하늘과 바다는 푸른 빛을 감추고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내가 오후 내내 바라봤던 몽여해변도 발갛게 물들며 석양이 대장관이겠구나, 다음엔 더 오래 머물러서 붉은빛이 내려앉은 바다와 한옥 지붕도, 그리고 다정한 고양이들도 스케치북에 함께 담아봐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버스는 목적지까지 40분 정도 달릴 것이므로, SNS에 생일자축으로 소무의도로 나들이를 다녀왔다는 짧은 글과 그곳의 풍경을 담은 어반스케치를 포스팅했다. 곧이어 포스팅 아래 생일축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지인들의 유쾌하거나 다정한 축하 메시지를 읽으며 집으로 향하는데, 온종일 혼자 돌아다녔는데 어쩜 이렇게 하루가 꽉 찬 것 같을까 의아하고 신기했다. 어이없는 사고도 있었지만, 종일 이야깃거리가 넘치는 날이었다. 쓸쓸하고 적적할 수 있는 생일자축의 나 홀로 어반스케치 여행인데, 그날 만났던 사람마다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한 조각씩 건네줬고, 어쩌다 보니까 섬마을 여행자센터에선 라떼 선물도 받았고, 섬 고양이들에게도 다정한 환대와 배웅을 받았다. 이건 뭐랄까? 자기 생일을 축하하며 길을 나서는 이에게 오는 행운의 선물이 아닐까 싶었다. 내 좁은 시야로는 그날 하루 나 홀로 돌아다닌 것 같지만, 일단 문밖을 나서보면 나라는 이는 다채로운 형태와 예상치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 그물망과 깊숙이 연결됐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그 느낌은 내가 받은 근사한 생일축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