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어반스케치 이야기
“내가 나무 한 그루를 보려고 이렇게 멀리까지 오다니!”
반계리 은행나무 어르신을 뵈러 가는 마을버스 안이었다. 아직 목적지에 닿으려면 거리가 꽤 남은 먼 도로에서도 아파트 11층 높이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설핏 보이는 듯했다. 관광객 누군가가 어이없어 하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을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하긴 그렇다고, 여기 다른 볼 것도 없는데 멀리서 오는 분들께 미안하다고 유쾌하게 맞장구를 쳤다. 실은 그때까지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러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다음 순간, 거대하고 웅장한 은행나무에 한 걸음씩 다가가면서 가슴에 뭔가 차오르고 눈물이 핑 돌고 목울대가 꽉 막히는 듯한 먹먹한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다가가던 그 존재는, 그저 나무 한 그루가 아니었다. 샛노랗게 변해가는 은행잎사귀들이 우수수 소리내며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어떤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고, 방사형으로 다채롭게 뻗어나간 가지들은 어느 세계든 한번 즈음은 닿아봤을 것 같았으며, 나무 둘레를 한 바퀴 돌기만 하는 데도 몇 분이 걸릴 만큼의 거대한 밑둥은 온갖 시공간의 존재를 품고 있을 듯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우주가 있다면 딱 그런 모습일 것 같았다.
은행나무 어르신은 800년 이상이라는 긴 시간을, 이를테면 유럽에서는 중세시대부터, 아시아에서는 징기스칸이 몽골제국을 세웠을 무렵부터, 우리 한반도에서는 고려중기 때부터 오늘날까지,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갖은 역사적 사건과 문제적 인물을 거기 한자리에서 묵묵히 견뎌왔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바라보면 볼수록 묘한 감동으로 마음이 일렁였다.
그래서일까? 반계리 은행나무에 관련된 전설들이 더 그럴 듯하게 들렸다. 은행나무를 심었던 이로는 두 사람이 거론되는데, 옛날 마을주민 성주 이씨가 나무를 심고 관리하다가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고, 또 다른 전설로는 어떤 큰스님이 이곳 마을을 지나는 길에 물을 마시고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 지팡이가 지금의 은행나무로 자랐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나무 안에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졌다고 하던데, 어쩌면 믿기는 힘들지만 무시할 수 없는 금기가 깃든 이런 이야기 덕분에 누구도 함부로 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여 오늘날까지 굳건하고 풍성하게 생명을 이어올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날 은행나무의 어마어마한 자태를 감탄하며 넋놓고 쳐다보느라 어반스케치할 시간이 얼마 없었다. 정령 같은 나무만 바라봐도 그냥 좋으니까, 오늘은 다 됐고 실컷 나무 곁에 앉아있다가 가자 싶었는데, 그래도 내 손으로 기록한 스케치로 그날의 감동을 남겨야할 것 같았다. 그러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게 분명해서 집에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일단 구석자리에 자리잡고 스케치북을 펼쳤다.
큰 존재 곁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므로, 그날 한 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림 그리는 걸 곁에서 구경하거나, 내가 하고 있는 어반스케치가 뭔지 궁금해서 물어보거나,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을 찍어주겠다고 먼저 자청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고맙게도, 그날 만난 사람들 모두 참 친절하고 유쾌한 분들이어서 최근 들어 스케치하는 시간 중에 가장 즐겁고 생기 넘치는 시간이었다. 다만 그날은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진 추운 날씨여서 찬바람 맞으며 야외에서 장시간 앉아있기가 어려웠던 데다가 은행나무 어르신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내 부족한 그림실력으로 담기에 턱없이 부족하여 구경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게 그림 멋지다고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은 분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날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20대 여성과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내 내 곁에 바짝 붙어앉아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 게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그림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해맑은 마음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따라 은행나무의 웅장함과 휘황찬란한 단풍빛깔을 스케치북에다 생각만큼 담아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내게 그녀는 끊임없이 해맑은 감탄과 유쾌한 응원을 쏟아내주었다.
“아이, 예뻐요! 진짜 고와요!”
내가 무슨 색을 칠하든, 어떤 선을 긋든 그림 그려지는 과정을 보는 게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손뼉까지 쳐주는 이가 옆에 있어서 덩달아 그림 그리는 게 신나고 즐거웠다. 얼마 후, 그녀에게 엄마는 그림 그리시는 데 그만 방해하자면서 내게 그림 그리는 거 잘 봤다고 늘 건강하시라고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오후의 따사롭고 부드러운 햇빛이 샛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위로, 내 앞으로 다정하게 손 잡고 걸어가는 노랑빛이 날 것 같은 모녀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문득 온 세상이 밝은 노란빛으로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는데, 어쩌면 온누리에 축복이 내려진다면 이런 광경이 아닐까 싶었다. 내 스케치북에 깃든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빛깔이 그때 내가 봤던 축복 같은 광경을 얼마나 옮겨닮았을까 모르겠지만, 그녀의 해맑고 생기넘치는 고운 말들이 어느새 그림 안에도 축복처럼 고여있는 듯해서 한참 부족한 그림인데도 한결 그럴 듯해 보였다.
그녀와 어머니가 노란 빛으로 일렁이는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서, 반계리 은행나무 어르신은 근래에 유난히 자신의 단풍을 보러 몰려오는 인간들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손에 핸드폰이라는 뭔가 하나씩 들고서 구름처럼 몰려오는 인간들의 객쩍은 방문을, 온갖 풍진세월을 몸소 겪어온 은행나무 어르신일지라도 이런 현상은 기이한 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덕높고 지혜로운 큰나무 어르신은 이런 현상 또한 여느 시절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이해하리라 싶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풍놀이 다니는 걸 좋아하겠지만, 한 해가 저무는 걸 그제야 등골 서늘하게 실감하여 나무가 그러는 것처럼 한해 동안 묵은 감정과 상처입은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한다는 걸. 단풍 보러 나들이 나왔다면서 실은 아무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속내를 속깊은 나무에게 슬그머니 털어놓고 간다는 걸.
그들이 떠나고 얼마 후, 노란색을 듬뿍 칠한 내 은행나무 스케치가 대략 마무리됐다. 나도 나무 어르신에게 다가가서 올 한 해 내 안에서 노랗게 빛바랜 잎사귀들을 하나씩 떨궈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