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적극적일 수 없는 봄 찾기

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3)

by 안이다

“어우, 손 시려서 도무지 사진을 못 찍겠네.”


근처에서 사진 찍던 동료가 카메라 셔터에서 발갛게 언 손을 떼내어 코트 주머니 속으로 밀어 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침 일기예보에서 분명히 낮 기운이 10도 이상 오르며 포근한 주말이 될 거라고 했는데, 내 체감상으로는 제법 온화했던 어제 기온보다 10도는 더 뚝 떨어진 강추위의 한겨울 날씨 그대로였다.


우리가 출사지로 나온 곳은 서해가 가까운 안산 대부도 [바다향기수목원]이고, 출사 주제는 [봄 찾기]였는데, 사방에서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봄을 찾아 카메라에 담겠다는 건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두어 주 후에 여길 왔더라면, 아니 한 주만 늦게 왔더라면,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고여있는 봄 햇볕 정도는 마중하러 나올 수 있을 텐데, 하는 난감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 출사팀은 수목원 입구에서 언덕배기까지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봄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 답답한 마음으로 수목원을 돌아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어떤 의문이 피어올랐다. 오늘 출사 주제가 봄을 찾는 것인데, 봄을 찾는다니 그건 무얼 어떻게 찾는 건가 의아해졌다. 해마다 3월이 되면, 뉴스 한 꼭지에서 기자가 활짝 핀 봄꽃을 클로즈업해 보이면서 바야흐로 우리가 기다렸던 희망의 봄이 왔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 같은 건가 싶었다. 그런 장면은 그동안 너무 자주 봐서 봄 찾기라고 하면 으레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건데, 여기에 그런 봄꽃이라고 할 만한 게 과연 어디 있을까 싶어지며 아까보다 더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눈은 익숙한 건 이미 안다고 대충 보거나 건성으로 건너뛰기 마련인가 보다. 수목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서 우리를 이끄는 사진 선생님이 버들강아지와 매화 꽃순을 담아보자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 나는 그런 것이 봄을 상징할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수목원에 들어서고 나서 그것들은 여기저기 눈에 띄던 것들이었는데, 그런 것들은 공원이나 수목원 같은 데 오면 으레 있는 거려니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수목원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 잡은 나뭇가지에 먼저 고개를 내민 버들강아지와 매화 꽃순은, 올해에 새롭게 고개를 내민 것들이었다.


‘으음, 그러니까 이런 게 봄이구나?’


어쨌든 나도 다른 사진 동료들이 하는 대로, 봄의 전령사라고 불리는 하얀 잔털로 덮인 강아지 꼬리 모습의 버들강아지를, 빨간 점으로 돋아나기 시작한 매화 꽃순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셔터를 눌러댔다. 어쩌면 구태의연한 방식의 봄 찾기에 나도 동참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카메라에 뭔가 담지 않으면 오늘 먼 걸음 한 게 헛걸음이 되고 말 거라는 걱정에 종종걸음치며 돌아다녔다.


그날 여전한 강추위의 한겨울 날씨를 견디며 분투했던 출사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핸드폰을 열었더니 온통 우울하고 불길한 뉴스로 넘쳐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전쟁 뉴스,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대선 후보들의 막말 퍼레이드, 조만간 20만명 대를 바라본다는 코로나 확진자 소식 등. 그런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읽자니 가슴 한켠도 칼바람에 시려오는 듯했다. 어쩌면 세상엔 희망이란 게 더는 없어 보이는 것 같아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우울한 생각이 젖어서 멍하니 맞은편의 어두운 창을 바라보는데 어느 순간 오늘 낮에 봤던, 내가 살아오면서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들여다봤던 봄의 전령사인 버들강아지와 매화 꽃순이 눈앞에 반짝반짝 떠올랐다. 그러면서 기분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게, 나는 하나도 몰랐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몰랐어. 어느 시절엔 봄의 기운을 지나치다고 할 만한 적극적으로 애써서 찾아내야 하는 건지도. 겨울이 여전해 보여도 봄이 조금씩 자기 세를 불리고 있다는 걸. 때론 그 기미만 알아차려도 사람은 다음 시간을 건널 힘을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면서 오늘 한겨울 추위 속에서 열심히 봄을 찾아 헤맨 건 참 잘한 일이구나 싶었다. 앞날이 너무 어두컴컴하고 막막해서 희망적인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일 때, 오늘 매서운 강추위 속에서 봄을 찾으려고 적극적으로 애쓰며 돌아다녔던 일을 기억하자 싶었다. 비록 어떤 자그마한 봄 조각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관찰하고 집중하고 움직이고 애쓰려는 마음이 나를 일으켜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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