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의 발견, 야쿠르트 맛

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4)

by 안이다

어딘가 장소를 찾아가는 것과 인터넷 검색은 비슷한 데가 많다. 길 찾기도, 검색도 손이든 발이든 부지런히 움직여야 원하는 곳이나 정보에 도달할 수 있는데, 두 경우 모두 한눈팔면 엉뚱한 데서 한참 헤매는 수가 있다. 어느 때엔 한눈팔기가 지나쳐 애초의 목적지 같은 건 까맣게 잊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뒤늦게 아니, 대체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상황이 흘러가게 되는 건 많은 경우, 시시때때로 뻗어 나가는 호기심과 조각나기 쉬운 주의집중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내 경우엔 머릿속의 지도 어플이 잘못 깔린 건지, 아니 지도 관련 두뇌가 잘못 끼워진 건지 어디 모퉁이를 연속으로 두세 번만 돌아도, 어느 건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때부터 어디가 윗길이고 아랫길인지, 오른 방향이고 왼방향인지 헷갈리며 머릿속 나침반이 엉켜버린다. 이토록 지독한 방향치의 길치라면 아무렇게나 뻗어 나가는 호기심이나 아무 때나 흐트러지는 주의집중을 단속해야 하는데, 본래 마음이란 건 단단히 먹으면 먹을수록 더 제멋대로 굴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어떤 강좌를 들으러 홍대 근처의 연구단체로 찾아갈 일이 있었다. 수업 전날, 인터넷 지도로 거기까지 가는 최단 거리를 검색하는데, 중간 지점 즈음에 국수 가게가 표시된 게 보였다. 내가 참새라면 국수 가게는 방앗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국수인지라 내일은 조금 일찍 나가서 강좌 전에 거길 들러서 저녁을 해결해야지 싶었다. 역시나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인지라 내가 찾으려던 정보 이상으로 뭔가를 더 알게 되고, 알게 된 이상 호오의 감정이 생기고, 그로부터 취하든지 버리든지 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다음날, 이런저런 일을 보고 합정역으로 출발하려고 시계를 보니까 언제 시간이 흘러갔는지 저녁밥 먹는 건 고사하고 당장 출발해도 지각할 판이었다. 어쨌든 부지런히 달려서 합정역까지 잘 도착했고 운이 좋게도 버스와 지하철 배차 시간이 잘 맞아서 예상보다 빨리 강의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슬그머니 드는 생각이 다음 주에 여기 올 때 찾기 쉽게 국수집이 어딘지나 알아두고 가자 싶었다. 그런데 그게 그날 강의에 한참 지각하게 된, 잘못된 판단의 시작이었다.


나 같은 길치는 평소 다니던 길에서 뭔가가 조금만 달라져도 온 우주의 패턴이 뒤섞이는 듯한 대혼란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다 자칫 잘못하면 또 저녁 내내 헤매게 될 거라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국수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국수집을 찾아가는 동안까지는 괜찮았다. 합정역 어느 출구에서 쭉쭉 걸어가면 되었으므로 어려울 게 없었다. 드디어 국수집 가게를 찾아가는 데까지 성공. 꽤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건지 6시가 넘은 한창 저녁 시간인데도 가게는 텅 비어있었다. 코로나 여파로 식당 영업이 여의치 않다고 하더니 여기도 그렇구나 싶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쨌든 다음 주엔 미리 나와서 여기서 맛있는 국수를 꼭 먹어야지 다짐하고 강의장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 보니까 내가 가려던 곳과는 점점 멀어지는 불길한 기분이 들더니 결국엔 대체 여기가 어디지? 하는 난감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럴 때는 지도 어플에서 현재 내 위치점을 찍어 보면 되겠는데, 때론 그런 것도 터무니없이 엉뚱한 지점이 표시되는 때도 있어서 그것 때문에 더 헤매는 일도 허다했으므로 괜스레 지도 어플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길을 물어볼 동네주민이라도 만나면 괜찮을 텐데 하필 그 시각의 골목길엔 아무 행인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또 내 평생의 불치병, 중증의 길치 증후군이 시작되었구나 싶었다. 이제 강의시간에 맞춰 가는 건 포기해야겠고, 출석하는 정도에나 만족해야지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일단 큰길로 통할 것 같은 길로 나아갔다. 이런 경우 나는, 처음으로 길을 잃었던 어린 시절의 아이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나아졌지만, 그날의 불안과 공포를 희미하게 느끼며 골목길을 헤매게 된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한두 달 지난, 4월 어느 날. 하교 후에 무슨 일로 친구네 집에 갔다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아무리 멀리 나가서 놀아도 동네 어딘가였는데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생활반경이 전보가 훨씬 커졌다. 당시 내가 다녔던 학교는 정문에서 쭉 내려가면 큰 도로가 나왔고 그 너머에는 밤낮으로 사람들이 붐비는 번화가가 있었다. 친구네는 학교 도로 넘어 번화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집으로 돌아오려면 큰 도로 아래 뚫린 지하도를 통과해야 했다. 친구네를 나설 때만 해도 우리집을 되돌아가는 일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하도에 내려오고 나서야 그곳에 얼마나 많은 출입구로 나뉘어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우리집은 대체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시험 볼 때 아무거나 찍기 하는 심정으로 일단 1번 출구로 나가 봤는데 우리집 가는 길목의 풍경과는 딴판이었다. 다시 지하도로 내려가서 다음엔 2번 출구로 나왔는데 역시나 아니어서 도로 지하도로 내려왔고, 이번엔 3번 출구로 나왔더니 이번에도 낯선 데여서 설마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고 지하로 내려와서 4번 출구로 나왔는데 무슨 귀신에 홀린 건지 그곳 주변이 아까 봤던 1번 혹은 2번 출구와 비슷한 풍경이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완전히 뒤엉킨 모양이었다. 딴에는 머리를 굴리고 손으로 지도를 그려보고도 했는데, 무슨 몹쓸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지하도와 비슷비슷한 출구 사이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것 같았다. 당시 내가 챙겨보던 TV만화는 <이상한 나라의 폴>이었는데, 어쩌면 폴처럼 나도 어질어질 구불구불 흔들리는 기괴한 세상에 빠져 버린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수십 번을 지하도와 여러 출구를 오르락내리락해도, 지하도에 처음 내려왔을 때는 환한 낮이었고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진 오후가 되었는데도 나는 도무지 집으로 가는 출구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갈증과 허기로 앞이 흐릿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러다 미아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감에 눈물을 몇 번이나 찔끔대며 지하도를 이리저리 왔다 돌고 도는데, 어느 순간 내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렸다.


“어? 쟤, 우리반 앤데!”


그렇게 말한 애는 우리반 남자애였다. 같은 반이긴 해도 나와 앉은 자리가 뚝 떨어진 먼데여서 한 번도 제대로 말을 나눠본 적이 없지만 분명히 낯이 익은 우리반 애였다. 그 아이는 아빠와 함께 지하도로 내려왔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친대로 지쳐서 혼이 나간 채로 멍하니 서 있는 내게 그 아이와 아빠는 다가와서 사정을 물었고, 거기서부터 내가 집으로 갈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줬다. 그 아이의 손에 이끌려서 어느 출구로 나왔더니 그 아이가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느닷없이 우리집으로 가는 익숙한 풍경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내가 공포에 떨며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헤매기만 했던, 사악한 블랙홀 같은 지하도와 출구가 갑자기 산뜻하고 다정한 우리 동네로 바뀌었다. 그때 알고 보니까 아이네 집은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고 있었다. 학교 앞까지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혼자 집으로 가려는데 아이의 아빠가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힘들었지? 이거 마시고 집에 가거라.”


그건 빨대를 꽂은 야쿠르트였다. 쪼르륵, 야쿠르트 한 병이 단번에 혀를 거쳐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흐릿한 눈앞이 맑아지고, 시원한 바람이 한바탕 불어서 온갖 쓰레기로 어질러진 머릿속을 깨끗하게 치워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아이와 아빠와의 우연한 만남 덕분에, 나는 집으로 무사하게 잘 돌아가게 됐다. 수십 년이 흘렀는데 그들이 내게 보여준 친절은, 그때 청량감 넘치던 야쿠르트 맛으로 남아서 내가 어디선가 길을 잃을 때마다 혀끝으로 떠올라서 불안을 덜어준다.


어느새 골목 모퉁이를 두어 번 돌다 보니까 길 끝에 큰 도로가 보였다. 도로에 나와서 보니까 건너편에 큰 교회가 서 있었다. 교회 이름을 지도 어플에 출발지로 입력해서 내가 가려는 강의장을 목적지로 길찾기를 해보니까... 와우, 세상에나! 내가 이렇게 바보구나 새삼 깨달았다. 거기서부터 딱 5분만 걸어가면 강의장에 도착한다는 것이었고, 그제야 그 동네의 구획 모양이 머릿속에 대충이나마 그려지며 나는 하필 어지럽게 얽힌 골목의 샛길만 골라서 빙글빙글 돌아다녔다는 걸 알게 됐다. 이번엔 좀 돌아가더라도 큰길로만 가기로 하고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마주친 어느 예쁜 카페. 카페 안쪽에서 화사한 주황색 불빛이 스탠드 글라스를 통하여 바깥으로 안온하게 퍼져 나오는 풍경이, 길을 잃고 헤매는 나 같은 사람에게 내밀어주는 어떤 따스한 손 같았다. 돌아보면 신기하게도, 길을 헤맨 끝에는 뭔가 평소에 보지 못한 게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평소에 다니던 길목에 있던 건데, 내가 봐도 그냥 스쳐 지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길치 상황에, 유난히 일렁이는 불안과 공포가 보통 때와는 예민한 감각을 일깨워 주기에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눈 뜨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카페를 가만히 바라보는 동안, 내 입안에서 수십 년에 느꼈던 야쿠르트의 청량한 맛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하, 오늘 엉망진창의 길치 에피소드 끝에서 발견할 야쿠르트 맛은 바로 여기 예쁜 카페구나, 오래 기억하게 그림으로 남겨둬야지 다짐하며 강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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