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쓰고 그리는, 산책 드로잉 에세이(5)
오늘 산책을 하러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비가 오기 전의 젖은 흙냄새가 훅 끼쳤다. 집에서 나올 때 어느 방향으로 갈지 생각을 해놓지 못했다. 단순히 그저께는 아랫마을로 갔으니 오늘은 윗마을로 가보자 싶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뒤편 길로 산책을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 뒤편에는 너무 오래되어 재건축을 기다리는 또 다른 아파트 단지가 있다. 그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담벼락이 끝나자, 낡은 아파트보다 더 낡고 바랜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버려진 마을일까,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일까 싶었지만 건물 안에는 빛이 어른거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안에서 기계를 깎고 조이고, 무언가를 나르는 사람들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낡은 건물만큼이나 옛날 방식의 가내수공업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했다.
차가 다닐 만한 골목에서 후미진 골목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숙이라는 푯말은 붉은 페인트칠이 다 떨어져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집에서 떨어진 오래된 마을이긴 해도, 우리 동네에서 여관이나 여인숙은 처음 봐서 생경했다. 소규모의 공장이 드문드문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아파트나 빌라촌인 주택단지에 누가 무슨 이유로 여인숙을 이용할지 의아했다. 어쩌면 가내수공업 같은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달이 셈을 치르며 그곳에서 먹고 자는지 모르겠다.
후미진 골목이 끝나고, 다시 넓은 차도 겸 인도의 길이 이어졌다. 그곳에서 태양광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고 있는 기묘한 공장을 발견했다. 태양광을 모으기 위한 대형접시 같은 것이 공장 마당에 설치되었는데, 무겁고 둔탁해 보이는 쇠뭉치 같은 기계만 있는 마을에 인공위성과 교신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첨단기계가 갑자기 나타나니 골목의 연대가 60, 70년대에서 급작스럽게 2020년대로 건너뛴 기분이 들었다. 혹은 60년대 옛마을에 미래의 인류가 비행선이라도 타고 나타나 잠시 안착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곳에서 몇 걸음 더 걸어갔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앞에 파란색의 수족관들이 쌓여있었다. 횟집이나 수족관에서 사용되다 깨지고 부서져 이곳으로 옮겨진 것 같았다. 물고기들이 잠시 머물렀던 곳, 갑자기 좁은 수족관 안으로 나타난 그물에 붙들려 파닥파닥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다가 물 밖으로 끌려 나왔던 곳, 그리고 영영 물과 이별했던 곳, 잠시 후 살점이 발려나가는 고통과 공포 속에서 서서히 목숨을 잃어가기 전 마지막 생명이 머무르던 곳. 그런 작은 세계 또한 사람들에게 버림을 맞고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