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선생님의 세 번째 수업
기말고사가 직전인 어느 날이었다. 다들 시험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때, 수업 시작 종을 치는 소리가
들리고 이현재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선생님에 대해 수업 첫날보다는 아이들이 가깝게
느껴졌는지, 선생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다들 내일모레 있을 급한 공부에 바빠서
책을 미처 다 정리하지도 못한 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이어폰을 끼고 공부하느라 선생님이 들어왔다는 것도 몰랐던 채연도 있었다. 채연은 앞의 친구
한 명이 책상을 건드려주자 그제야 교실 상황을 파악한 듯 서둘러 이어폰을 뺐다. 채연이는 이 상황에서
당연히 선생님의 질책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수업 시간 이후에, 나의 헌법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질문에 채연이가 대신 손을 들고 말을 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헌법 정치 이런 이야기.. 저희도 솔직히 알고는 싶은데요.
저 얼마뒤 시험이고 해서.. 자습으로 돌리면 안 될까요?"
이 말을 한 채연이의 심장은 쿵쾅거렸다. 자기 스스로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반 분위기는
어색했다. 이현재 선생님은 채연이의 책상 근처로 다가왔다. 책상 위에는 밑줄이 잔뜩 그어지고 하이라이트가 칠해진 '정치와 법' 책도 있었다. 이현재 선생님은 책을 후루룩 넘겨보더니 다시 채연이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교단으로 향했다.
"너희들 중에 게임 좋아하는 사람?"
대부분의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시험에 찌든 분위기에서,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 만으로도 아이들의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공부가 정말 하고 싶은 사람? 시험공부 말고 정말 진지하게 공부가 좋은 사람 말이다"
뒷자리에서 채연이가 손을 들었다. 다들 오~ 하면서 채연이를 주시했다. 그러나 채연이 말고는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너희는 들었을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게임은 안되고, 공부먼저 하라는
소리 말이다. 그런데 공부와 게임의 차이에 대해 생각한 적 있나?"
아이들은 시험공부하던 책을 한쪽으로 미뤄놓은 채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스크린 칠판에 집 두 채를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그림 실력을 보고
킥킥거렸다.
"옛날에 갑돌이와 갑순이의 집이 있었다. 갑돌이는 농민이었기 때문에 벼농사를 열심히
지었지. 그래서 갑돌이네 집에는 쌀가마가 10 가마가 쌓였다. 반면 갑순이네 집은 보리농사를
짓기 때문에 보리가 10 가마가 쌓이게 되었다. 문제는 갑돌이네와 갑순이네가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갑돌이와 갑순이가 교환과 협상, 경쟁을 하지 않는 이상
사회적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쌀을 먹는 사람은 쌀을 보리를 먹는 사람은
보리만 먹는다.
너희들이 스스로를 위해 공부만 한다면 갑돌이네 쌀은 계속 집에만 쌓일 거다.
이 말을 다시 하자면 너희들이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
선생님은 집 그림 및에 교환과 협상 경쟁 밑에 밑줄을 쭉 그었다.
"쉽게 설명하겠다. 보리와 쌀의 가치를 1:1로 볼 건지 1:2로 볼지 결정하는 것이 경제다. 하지만 정치는 쌀 1 가마 보리 2 가마를 걸고 한판 겨루는 싸움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첫판에 이기는 사람이 모두를 가져가는 것 일수도 있고, 세 번 겨루고 막판에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가져갈지 결정하는 것 일수도 있다. 누가, 얼마큼, 어떤 식으로 가져갈지를 정하는 것을 결정하는 방식을 놓고 공정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정치'다. 그리고 결정하는 사람이 정치 주체다 "
선생님은 양쪽 손 검지와 중지를 V자로 만들어 접는 표시를 해 보였다. 강조의 뜻이었다.
지우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게임이랑은 무슨 상관이 있어요?"
현재 선생님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하는 게임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첫 번째는 레벨 올리기라고 본다. 그건 현실 세계에서 계급이라고 보면 된다. 두 번 빼는 아이템 얻기. 기본적으로 노력과 돈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제일 중요한 '대전'이다. 대전에서 승패를 겨뤄 이겨야만 보상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규칙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지우는 대답 했다.
"게임회사겠죠.."
선생님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게임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레벨 올리기도 아이템 얻기도 쉽다. 하지만 게임을 계속할수록 점점 어려워진다. 게임을 하는 시간도 늘어나지. 아이템을 계속 사야만 계급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그런 이유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게임회사가 아무리 너희가 게임이 불공정하다고 말을 해도 게임의 기본 규칙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우는 생각 했다. '사실 요즘 아이들 가운데 게임에 한두 번 빠져보지 않은 아이들이 없는데. 정도가 심한 아이들은 이미 불법 도박까지 갔을 정도였다. 그러나 애들도 대부분 안다. 게임을 재미로는 하지만 하는 만큼 보상받는 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질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시 잊어버리고 게임에 빠져드는 건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공부는 금방
그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재미가 없다. 그러나 게임은 즉각적으로 무언가를 준다는 그것만으로도 짜릿했다.
하지만 게임의 승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거나, 아무리 게임을 해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게임이 있다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그런 설계자가 있다면 당장 게이머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채연이 손을 들었다.
"그럼 선생님은 쌀가마를 집에 늘리는 게 좋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게임회사에게 매일 조종당하면서 게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에요?
선생님은 복잡해진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선생님 말은, 너희들이 집에서 혼자 노력만 해서도 너희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규칙이 정해진 사회경쟁 속에서 노력을 한다 해도 패배할 확률이 높다는 거다."
아이들은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너희들은 희망이 있다.
현실 사회는 게임과 비슷하지만 공정하기 위해 훨씬 많은 노력을 한다는 거다.
법을 잘 알고 대처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있다."
선생님이 아까의 필기를 지우고 다시 적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1,2,3,4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5번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이미 그 마음을 아는 듯 보였지만 답을 주지는 않았다.
"다음 시간까지 5번의 답을 알아오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도록 하겠다."
수업종이 마침 울리자 아이들의 원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선생님은 뚜벅뚜벅 교실 밖으로 나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