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헌법'의 시작

이현재 선생님의 첫번째 수업

by Who am I

도로에서 픽시 자전거 타는게 불법이라고요?


월요일 2학년 1반 이현재 선생님의 첫 번째 수업은 좀 심란한 상태로 시작되었다. 반 아이들은 현성이가 아침에 픽시 자전거를 타다가 도로에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현성이는 이 날도 아침 등교에 자전거를 타고 오는 중이었는데,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우회전하던 출근길 도로에서 차에 들이 받혔다. 헬멧도 쓰지 않았던 현성이는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에 실려간 상태였다.

이현재 선생님은 다소 무겁고 진지한 표정으로 교단으로 들어섰다. 선생님은 교실 안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미 사고를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너희들 중에 도로애서 주행이 가능한 자전거가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언제나 그렇듯 교실은 여전히 침묵이 가득했다.

으레 다친 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의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안타깝지만... 현성이는 오늘 아침 불법을 저질렀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사고의 과실이 본인에게 있으니 경찰조사에서 그대로 진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성이가 '불법'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사전에 안 했을 행동이다. 무사히 교실에 다시 돌아오면 확실하게 배워야 할 내용이다"

선생님은 잠깐 쉬었다가 스크린으로 된 칠판에 도로교통법 20조를 띠웠다. 자전거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도로 교통법 17조 "차마"란 다음 각 목의 차와 우마를 말한다. 가. "차"란 다음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1) 자동차 2) 건설기계 3) 원동기장치자전거 4) 자전거 5) 사람 또는 가축의 힘이나 그 밖의 동력(動力)으로 도로에서 운전되는 것. 다만, 철길이나 가설(架設)된 선을 이용하여 운전되는 것, 유모차와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하는 보행보조용 의자차는 제외한다. 20조 "자전거"란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에 따른 자전거를 말한다. 자전거 활성화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자전거"란 사람의 힘으로 페달이나 손페달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구동장치(驅動裝置)와 조향장치(操向裝置) 및 제동장치(制動裝置)가 있는 바퀴가 둘 이상인 차로서 안전행정부령으로 정하는 크기와 구조를 갖춘 것을 말한다. 제동장치가 있어야 한다..


선생님은 자전거와 관련된 제일 마지막 부분에 하이라이트가 들어간 밑줄을 쭉 그었다. 사실 현성이와 그 몇몇 친구들은 브레이크 없는 픽시자전거가 불법이란 것을 처음 알게되었는 지, 썩 좋지 않은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딱히 반박할 무언가는 없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자전거를 탈 때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남들 눈에 띄는 자전거를 도로에 타고 나가서 주목받고, 누군가 그렇게 했으니 스스로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부모님도 이제껏 잔소리를 했지만 자전거에 꽂힌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느린 일반 자전거를 타고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신호에 걸릴 때마다 멈춘다면, 먼저 가는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실력이 곧 자기의 존재증명인데... 법이야 뭐 안 걸리면 그만 아닌가 싶은 마음 아닌가.


선생님은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다음 말을 이어갔다.

"너희들이 정치와 법이라는 내 과목을 듣기 전에, 미리 '불법'의 의미를 한 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법을 안 지키면 어떤 일이 생기지?"

서윤이가 앉은 채로 힘 없이 말했다.

"벌금이나 뭐 심하면 감옥에 가는 거 아닌가요"

서윤이는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혹은 편의점에서 몰래 술을 사다가 걸린 아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학교폭력신고에 관련된 사건, 불법촬영이나 SNS에 관련한 것도 지난 학기에 몇 차례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이 사회에서는 어떤 사건이 생기면, '책임'이 누군가에게 있는가 따진다. 현성이가 '불법'인 제동장치가 없는 픽시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서 주행했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본인이 다친 것 이상으로 나라에 벌금을 내거나 돈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너희는 미성년자이니 부모님이 책임을 지는 것도 물론이다"

교실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법을 알고 법적인 행동을 했을 때만 너희들은 보호받을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을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사고를 낸 차 운전자는 이미 픽시자전거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인이고 현성이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 현성이는 철저하게 약한 쪽이다"

서윤은 생각했다. 지금껏 안전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껏 귀에 닳도록 듫었지만 '법'을 눈으로 보니 훨씬 무겁다고. 자신 역시 픽시자전거는 아니지만 전동킥보드를 친구와 둘이 타면서도 자신이 다칠 것은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상대방에 뭔가를 물어주거나 소송당하면서 꼼짝없이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도 없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지금껏 해왔던 행동 중에도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선생님은 교실 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로 하신 듯, 프린트된 종이를 두 장씩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종이에는 각각 '나의 헌법', '대한민국의 헌법'이라는 제목이 아래 숫자를 따라 빈 줄이 그어져 있었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질문했다.

이현재 선생님은 양복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교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 버릇은 선생님이 주로 뭔가를 생각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이 종이에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지식이 없는 너희들의 상태란 말이지. 저번에 말한 것처럼 누군가 정해놓은 법에 따라 사는 노예 같은 상태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한 장에는 너희 스스로 자신에게 규정하는 법을,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사회에서 정해준 법을 적을 것이다. 노트를 만들어서 적어도 좋다.

자신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너희는 고등학생이니 하루종일 자겠다는 내용, 5끼를 먹겠다는 내용은 피하는게 좋다. 수업을 안들어오는 것도 제외다. 선생님 한 번 예를 들어주겠다."


선생님은 스크린 칠판에 '나의 헌법'이라고 제목을 쓴 뒤 그 밑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 이현재는 2학년 1반의 담임으로 수업 3분 전에 교실에 반드시 도착할 것이다.

나 이현재는 모든 반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부를 때는 반드시 '성(姓)을 뺀' 이름만을 부른다.

단, 이름이 같은 경우만 제외"


아이들은 '성을 뺀'이라는 선생님의 센스에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 '성을 붙인' 이름으로 불리는 상황의 의미를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보게 된 선생님의 귀여운 면이었다.


그리고 '나의 헌법'과 나란하게 '대한민국 헌법'이라고 적었다.

칠판에는 헌법 1조 1항이라는 제목아래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두 항목이 나란히 적혔다.

"법이 워낙 길다 보니, 다 적지 않아도 좋다. 시간이 없다면 주제어를 적고 1조만 적어도 괜찮다. 키워드를 찾고 그에 따른 내용을 적어도 괜찮다"


반아이들은 헌법 1조에서 왠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추상적인 무거움을 느꼈다. 나는 과연 저기에 속하는 사람일까? 싶은 두려움도 느꼈다. 막연하게나마 짐작하는 것은 저 문구를 선생님이 외우라거나 감동받으라고 쓴 것이 아닐 거라는 것이다. 선생님이 수업의 앞부분에 픽시자전거에 대한 처벌을 이야기한 것도, 이런 과제를 내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교실에는 40분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소설에 들어가는 인물과 지명은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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