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 앤>과 <파친코>를 통해 본 세상의 단면
돌아보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시골소녀 앤 셜리의 인생 첫머리에는
남다른 사회적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집에 잘못 입양된
그녀가 집에 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천진난만함과 순수한 매력과 운에 빗대어 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들을
상대로 설득할 수 있었던 것에는 앤의 당돌함이 있어서였다. 이 말은 앤이 시골사람인
앤과 매튜보다 훨씬 앞서서 생각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그녀의 의도가 마냥 나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누울 자리 보고
뻗는다고 매튜의 첫인상과 그린게이블즈의 좋은 주거조건이 자기 일부가 될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리는 눈치 빠른 아이였다. 그러나 그런 티는 절대로 내지 않는다. 하지만
깐깐한 청교도스타일의 마릴라를 상대로 절대로 굽히고 들어가지 않는 당찬 아이였다.
어쩌면 소설 첫 장에 나오는 그린게이블즈에서의 협상은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드는 앤의
뛰어난 사회적 능력을 잘 보여준다,
1. 앤은 그 당시에 필요한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았다.(집과 가정교육)
2. 마릴라는 1차에 안된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바뀔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발을 디딘 이상 쫓아내는 것이
청교도의 도덕성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최대한 가련한 쪽을 택했다.
3. 앤은 마릴라보다 앞서서 상황을 내다보고 장악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감정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을 먼저 만들고
자신의 가정법 "만약 제가 이 집에 살게 된다면..."을 여러 번
마릴라에게 주입시켰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이 왜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지를 표현하는 앤의 말이 하도 유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용히 살던 마릴라가 설득된 건 당연했다.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설레발이고 김칫국이지만 적어도 마릴라에게는 앤의 언어가
먹혔던 것이다. 그것도 얼떨결에..
아직도 어리기 때문에 여러 차례 시행착오가 계속 있었지만, 앤 셜리의 장점은 그래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포기하려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원하고 꿈꾸는 이 아이의 그 밝음이 고지식하고 순진한 어른들을 감탄시켰다.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생의 의지가.
어른이 되어보니 너무나 많은 경우에 뭔가를 바꾸기도 전에 포기하는 모습들을 본다.
이것은 어쩔 수 없어. 받아들여야 해.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 이런 말들.
그러나 과연 바꿀 수 없을까.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생각보다 쉽게 바뀌는 일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 자신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과연 실제적인 조건 때문일까. 나는 백 퍼센트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릴라와
매튜는 아이를 키우는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넓은 농장과 빈 방과 나름의 지식을 가진
계층이었다. 사실 앤에게는 그보다 더 낮은 조건에 더 작은 주거라도 받아들일 여지가
있었다. 온전한 가족의 형태만 있다면. 안된다고 믿은 것은 마릴라 주변사람들과 본인의
자신감 없음이었던 것뿐이다. 그녀는 주변으로부터 '결혼도 못한 노처녀' '아이도 없고
키워본 적도 없는 여자' '아름다움과는 먼 여자'라는 눈총을 받으면서 평생 살았다.
그러나 남의 시선에 갇혀 살면서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농장을 도와줄
평범한 아이를 원한다고 하고 실제로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표현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속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모든 할 말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속에 갇혀있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소극적이나마 변화를 시도했을 때, 누군가 간절하게 그 손을 잡았다.
그로 인해 그녀가 직접 겪은 혼란과 후회는 별개로 하자. 중요한 건 그녀가 바뀌고자
마음먹고 실천했다는 것이다. 옆집의 여자가 뭐라든, 그냥 가본 것이다.
오늘도 독서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 너머를 바라본다.
지난주부터 읽었던 이민진의 '파친코'를 다 읽었다. 자이니치.
재일 일본인들의 세대에 걸친 가족사를 들으면서 들은 생각은 이토록
차별과 불합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체념하지 않고 살아갈 것인 거가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집을 잃어버린 앤과 같은 아이가 넘쳤던 지난 과거의 역사. 미친 전쟁의 시대.
그 가운데에서 살아남은 선자가족과 후손들은 마냥 깨끗하지 못했다.
이민 3세대인 솔로몬은 미국은행에 취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잇기로 마음먹는다. 일본인들이 더러운 야쿠자의 일이라고 비난하는
사업. 세금을 아무리 내도 일본 국민으로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외국인신세의 조선인.
그들이 하는 천박한 사업. 그러나 속내를 돌아보면 그것조차도 성실하게 일하고
사람을 고용하고 임금을 주고 세금을 내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사실은 일본 사회가 조선인에게 제공하는 줄 수 있는 고용과 일자리가 그것 외에는 없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가려 해도 한국에는 그들은 이방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더럽다는 사업에서 자신을 유지하면서 일본인보다 돈을 더 많이 번 다는 사실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것도 그 이하의 일도 없다는 것을.
그것도 생이라는 것을.
그런 일본 사회조차도 선자가족의 정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파친코 업으로 돈을 버는 재일일본인 가족들이 사실 그 사회에 제일 정신이 바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욕망이란 부정한 것일까. 이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먹고살기 벌이는 모든 일들이
알고 보면 다 그렇고 그런 식으로 오염되어 있는 걸까. 그것이 개인의 탓일까.
소설 초반에 정말로 깨끗한 사람인 이삭은 일찍 죽었다. 아들 노아도 40대에 죽었다.
현실세계에서 티 없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실상 조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빨간 머리 앤>에서 앤은 고아에서 집을 얻고 친구를 얻고
가족을 얻고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결혼을 하고 가족을 가졌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앤이 사는 사회가 도덕적인 곳이라는 전제가 필요했다.
앤의 노력에 그만큼 긍정적으로 상응하는 가치 있는 사회로 인해 그녀는
찬란하게 꽃을 피운 것이다.
3월에 움트는 새싹처럼 피어나는 어린아이의 생의 의지를 사회가 인정해 준 것이다.
'너는 가치 있는 아이야' '너는 아름다워'라고. 그렇기 때문에 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재일 일본인인 노아는 살면서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 노아는 오로지
자신이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만 일본에서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늘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런 그가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늘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자책감 때문에.
와세다 대학에 들어갈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노아는 알 수 없는 불안에 늘 시달리면서
자신이 사회에 속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동생보다 더 불행했다.
그가 가진 세계관이 너무 도덕적으로 완벽하기 때문에 거기에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이다. 태생이라는 어쩔 수 없는 부분마저도.
나는 세상이 일그러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세상이 욕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 세상에 대체 원래부터 그랬다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이 생기기 전부터도 그런 원칙들이 존재했다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유교문화만큼이나 어렵고 바뀌기 힘든 것조차도 점차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변해간다. 지금도 그렇게 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몸으로 익힌 것들을 더 믿는 편이고, 그들 자체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아무리 변화를 막으려 해도, 세상은 변한다. 도덕적인 것과는 별개로.
'당위의 법칙'보다 '욕망의 법칙'은 훨씬 강하다.
세상의 흐름은 궁극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주어진 자기 생 내에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면서 살아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고
결국은 내 수명 안에서 살고 죽는다. 아이들을 우리 마음대로 바꾸려고 마음먹어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가르침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믿는다.
결국은 자신이 욕망하는 대로 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잔소리 없이 지지해 주는 것뿐이다. 그들로부터
얻는 더 이상의 존경이란 없다
어차피 맘대로 안 되는 세상이라면, 그까짓 거 스스로 계획하고 선제공격을 하면서
살자. 안되면 울고 호소하고 붙잡다가. 안되면 그까짓 거 깨끗이 포기하자.
열렬히 원하고 깨끗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본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옳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내 목숨만큼의 티켓을 한 장 갖고 있다.
죽은 진시황도 지금의 나 같은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한다.
어차피 깨끗하게 살아도 힘들고, 더럽게 살아도 힘들다. 더럽게 불법으로 살아서
행복할 거라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각종 스트레스와
압박에 찌들어 산다. 깨끗하게 살면서 편하게 살면 좋겠지만 둘 다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본인이 원하는 것이 정말 안 되는 것임을 알게 될 때까지 노력하고자
한다. 그래도 안된다면 그것은 세상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