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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Jun 13. 2024

앤 셜리, 부모님을 만나다

어제의 장미가 시들지 않은 그 이유

모든 연애소설의 길이 직진이 아니라 유턴과 갈림길의 반복이듯이, 길버트와의 관계가 쉬는 시간에

접어들자 앤에게도 새로운 장소에 가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발자취를 찾는 것. 그리고 고향 남자 친구들이 아닌 다른 남자들과 만나보는 것

두 가지였다.


대학에서 만난 필리파라는 부유한 친구의 소개로 가게 된 볼링브로크. 그 가운데서도 고든 가문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저택 '마운트 홀리'눈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아놓은 필리파의 친구들로 흥겹게 북적이는 

곳이었다. 마차 나들이, 무도회, 소풍, 뱃놀이가 쉴 새 없이 이어져졌고, 필리파는 이 모든 행사를 '대축제'

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표현했다.


꿈에 본, 기억 속의 노란 집

앤은 볼링브로크에 머무르는 동안 자기가 태어난 집에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앤이 그토록 자주 꿈에

그렸던 대로, 외딴 거리 있는 작고 허름하면서 노란 집이었다. 

"내가 마음에 그려둔 모습과 거의 똑같아. 창가에 인동덩굴이 없지만 문 옆에서 라일락이 자라고.. 그렇지 창문에 모슬린 커튼이 달려있어. 아직도 집이 노란색 칠을 한 채로 남아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힘든 인생을 돌아 돌아 찾게 된 자신의 집에 대한 앤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이곳에는 키가 크고 깡마른 부인이 문을 열어주었고, 앤에게 20년 전의 기억에 대해 들려주었다.

"네 셜리 부부는 20년 전에 여기서 살았어요. 이 집에 세를 들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인지 기억나요. 둘 다 열병으로 한꺼번에 죽었지요. 정말 슬픈 일이었어요. 아기만 남게 되었답니다. 아마 그 아이도 오래전에 죽었을 거예요. 자주 아팠거든요. 토머스 씨 부부가 아기를 데려갔어요. 자기네 아이들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요."

앤은 대답해 주었다. 아기는 죽지 않았다고 자기가 그 아기라고..

앤이 미소를 짓자 부인은 비명을 질렀다. 앤이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란 듯 말이다.

그리고 앤의 빨간 머리가 아빠의 바로 그것이라고. 눈 하고 입조차도 엄마와 너무 닮았다고. 그리고 앤이 미처 몰랐던 사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존경받는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앤의 유년기에 그렇게 많은 질문을 던졌던 머리와 외모 그리고 말 잘하는 성격까지 부모님의 그것이었다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하는 앤에게는 꼭 필요한 대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


작고 추억이 담긴 집에서 앤은 자신의 엄마가 처음으로 자기를 낳았던 방. 동쪽에 있어 아침에 뜨는 광경이 보이고 자신은 해가 뜨는 그 아침에 태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앤은 작은 동쪽 방을 돌아보면서 엄마가 앤의 탄생을 기다리며 그렸을 수많은 날들을 떠올릴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들이 불과 일 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도..

"엄마는 지금 나보다도 어렸을 때 나를 낳았구나" 앤은 조용히 말했다.

어쩌면 본인보다도 더 어리고 경험이 없던 엄마가 자신을 낳고 어떻게 살았을까. 앤을 두고 떠나야 했던 마음은 어땠을까. 앤은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앤이 아래층에 내려가자 부인은 2층 옷장을 정리하다가 찾아낸 편지 꾸러미라며 전해준다. 편지 봉투 위에는

앤의 엄마 결혼 전 이름인 '버사 윌리엄스 양'이라고 적혀있었다. 부인은 남아있는 것이 이것뿐이라면서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주었다. 앤은 유품대신 받게 된 편지에 목메어하면서 감사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앤의 부모님이 짧지만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었다고 전해주었다. 

앤은 편지를 당장 읽는 대신, 근처에 있는 부모님 묘지에 가서 흰 꽃을 바쳤다. 감사의 의미로. 그리고 집에 돌아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편지들을 차례로 읽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냄새와 생각과 감정이 배어 있는 오래된 편지지에서 그분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느꼈다. 아버지가 잠시 외부로 사이 엄마가 써 내려간 편지에는 아기가 얼마나 영리하고 밝은지, 무엇보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설명하는 젊은 엄마의 자부심이 가득했다


잠든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깨어있을 때는 훨씬 사랑스럽네요

라고 앤의 엄마 버사 셜리는 추신으로 적어놓았다. 이 문장이 어머니가 쓴 마지막 글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는 글이었다. 그렇게 앤의 엄마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밝은 희망을 주고 갔다.


앤은 필리파에게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았다고. 그 편지 덕분에 그분들이 살아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자신이 이제 고아가 아니라고. 책장 사이에서 어제의 장미가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 인걸 발견한 기분이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출처: 핀터레스트




앤의 부모님이 앤을 두고 세상을 떴을 무렵, 세상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키울 능력도 충분치 않은 토마스 부부가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를 갖기 위해 어린 돌쟁이를 데려간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앤은 미운오리새끼처럼 취급받았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남과 너무 다르다는 점, 그것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공연히 자신의 빨간 머리를 미워했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온 앤은 자신의 빨간 머리가 유전이고 다시 한번 부모님과의 연결됨을 느꼈다. 또 엄마 아빠가 자신의 성격과 비슷하다는 사실 최후의 순간까지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자신에 대한 긍정성을 더 갖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앤의 인생에서 있었던 불행한 사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고 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부모님은 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대답. 너는

사랑받고 태어난 아이라는 답을 편지를 통해 전한 것. 앤을 일으키기에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인생의 불행이 닥치더라도, 부모도 아이도 정작하고 밝게 살아야 한다는 것.. 어제의 장미 오늘까지도 살아 숨 쉬는 그 이유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항상 6월인 세상에 살면 어떨지 궁금해요. 모든 게 오늘처럼 매력적이라면 지루할 틈이 없겠죠?

메인 사진 출처: flikr. baby 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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