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o am I Aug 22. 2024

걱정하지 마, 앤
넌 원래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니까

봄날의 신부가 된 앤 셜리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앤 시리즈로 연재를 시작한 지 꽤 오래됐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벌여만 놓고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마음속에선 이 작은 소녀를 보내기가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하지만 늘 읽고 나면 그 감성

때문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빨간 머리 앤> 시리즈라고 다시 말하고 싶다.


3권의 레드먼드의 앤까지 읽으니, 앤이 20대 중반에 접어드는데 3권의 마지막은 앤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길버트와의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끝내며 마무리된다. 그 유명한 한마디..

'석판으로 내 머리를 내려쳤을 때부터 나는 너뿐이었어'이 말을 여운으로 남기면서 

(로맨스 드라마는 이런 맛에 보는 거죠..)

 반면 길버트와 멀어졌던 2년 동안 썸(?)을 탔던 로이와의 관계는 결국 깨지고 마는데 로이는 비록  잘생기고 모든 것을 갖춘 왕자님 타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치명적인 단점으로 프러포즈에 실패하고 만다. 막상 로이의 어머니와 그 여동생들의 캐릭터가 너무 차가워서 앤의 소박하고 따뜻한 성격과 안 맞는다는 것, 그리고 로이가 앤의 재치 있는 농담을 못 알아듣는 치명적인 단점. (로이의 여동생은 오빠가 재미없는 사람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나중에 답변해 주었다. 잘생긴 왕자님인데 마치 인공지능이 대답하듯 정답만 말하는..)

결국 프러포즈받는 순간에 로이가 준 로맨틱한 환상이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한 단계 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아마도 앤이 평소에 실수와 경험을 통해 배워가는  타입이라서 그런 듯하다. 굳이 말하면 귀납적 타입이랄까.

앤의 성격은 소설 속에서 하나의 전형적인 패턴을 이루는데 아마도 이 시대의 다른 여성들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보통은 중요한 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길 듣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앤은 행동파에 가깝다. 일단 일단 일이든 연애이든 시작하고 보는 스타일. 그 뒤에 결과는 나쁜 것과 좋은 것이 명확하다. 일단 경험하고 배우는 타입이라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잘 듣지 않는 편. 최후에 일격을 맞고 난 뒤에 확실하고 크게 배워서 성장하는 스타일이지만, 그 과정이 딱히 밉지 않다. 그녀의 프린스에드워드 섬처럼 마밝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마 작품의 처음에 등장했던 그녀의 귀여운 수다를 떠올려본다.


아이는 손을 뻗어 마차 옆을 스치는 야생 자두나무 가지 하나를 꺾었다.

"아름답죠? 비탈에서 옆으로 뻗은 저 나무 말이에요. 온통 하얗게 레이스를 단 듯한 저 나무를 보면 뭐가

생각나세요?"

"글쎄다. 잘 모르겠구나."

"왜요, 신부 같잖아요. 예쁜 안개 면사포를 쓰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요.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 모습이 어떨지 상상은 할 수 있어요. 제가 신부가 되겠다는 기대는 안 해요. 너무 못생겨서 저랑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 온 선교사라면 또 모를까요. 외국인 선교사라면 그렇게 까다롭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꼭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싶어요. 그게 제가 이 세상에서 꿈꾸는 가장 큰 행복이에요, 전 예쁜 옷이 정말 좋거든요. 태어나서 예쁜 옷을 입어 본 기억이 한 번도 없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 입고 싶은 개 아닐까요? 전 제가 눈부시게 차려입은 모습을 차려입은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해요" 



마지막으로 앤이 살던 프린스에드워드 섬 에이번리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1873년 7월 1일,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이어 캐나다의 일곱 번째 주가 된 곳으로, 지도에서 보면 앤이 태어난 노바스코샤는 섬보다 좀 더 아래에 위치해 있다. 

넓은 평원과 숲 그리고 동쪽으로는 북대서양의 바다를 접하고 있는 평온한 이 섬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과 인생을 주는 아름다운 곳인 듯하다. 책을 읽다 보면 화이트 샌즈 이런 지명이 나오는데 지명만 들어도

대략 이곳이 바다에 가까운 곳인 것을 추정할 수 있다.



1. 사과나무 꽃 터널

매슈와 처음 마차를 탔던 길도 아마도 우리나라 과수원 길과 거의 비슷한 정도의 꽃들이 만발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2. 자작나무 길


앤과 다이애나가 함께 갔던 등굣길에는 자작나무가 많았다. 구불구불 한 길 끝에는 하얀 건물인 학교가 있었을 것이다


3. 가문비나무 숲길



4. 들장미

주일학교에 처음 가던 날, 앤은 들장미와 미나리아재비로 모자를 장식하는데, 앤이 꺾은 들장미는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 다른 종류라고 한다. 실제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숲과 들에는 여러 종류의 들장미가 자라는데 앤이 한편으로 화려한 들장미를 좋아하면서도 미나리아재비 같이 소박한 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왠지 재밌다.

앤은 앨런목사 부부나 모건부인이 왔을 때도 들장미로 풍성하게 식탁을 장식했다.

장미와 관련해서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은데, 앤은 만약 장미 같은 꽃이 장미라는 이름 대신 엉겅퀴라든가

낮은 부채라는 이름을 가졌더라도 지금처럼 예뻤을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오랜 시간 생각해 봐야

답을 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토종 식물인 애기똥풀이 애기똥풀이 아니라 '아기보살'이라던가 '노란 신부' 이런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앤이 맨 처음으로 에이번리에 와서 한 일은 모든 자연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다. 다른 이름을 부름으로써 평범한 대상은 그 의미면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 산사꽃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 5월에서 펴서 메이플라워(mayflower)라고도 불린다는 이 꽃은 우리나라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꽃술이 여럿 달린 여러 송이가 무리 지어 피고 초여름에 흰 꽃이 피고 가을에 붉은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앤은 친구들과 산사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모자를 장식했으며, 길버트가 자기에게 산사꽃을 주고 싶어 하자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6. 애플 제라늄

앤은 초록지붕집 창가의 제라늄에게 '보니'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마릴라는 '사과향 제라늄'이라고 알려준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애플제라늄인 것 같다. 마릴라에게는 부엌에 있는 평범한 화분이 앤에게는 무척 특별해 보였나 보다. 앤 덕분에 이 작은 꽃은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앤의 집 앞에 있던 '눈의 여왕' 벚꽃 나무는 앤이 초록지붕에서 처음 맞는 아침에

앤을 맞이해 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비록 그녀가 학교 때문에 떠났을 때 태풍에 쓰러지긴 했지만..

아마도 앤이 아니었다면 벚꽃나무의 아름다움을 알아주는 존재가 없었을 듯하다.

작은 시골 소녀 한 명이 섬을 사랑해 그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바꾸었던, 이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계속 남을 것 같다. 딸을 이해하고자 시작했던 나에게도..

언젠가 캐나다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라보면서 글을 마친다.


  

이전 08화 앤 셜리, 부모님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