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입방정’을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빌런은 있었다. 그것도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생각지 못한 시간에 불쑥.
윌 스미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내에 대한 농담을 한 코미디언 진행자의 뺨을 때렸을 때, 선배 연기자인 덴젤 워싱턴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고 한다. “악마는 네가 가장 높이 날아 오르는 그 순간 찾아온다고”.
가여운 입방정 빌런은 상대의 마음에 불을 붙여 맞대응 하게 만든다. 사람은 일단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나면 평소에 알던 자기 자신이 아니다. 그래서 위험하다. 어디로 갈지 모르니.
모두는 그걸 안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이불킥 할 거리를 만들면서 산다.
지금껏 명성을 쌓아온 유명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과정이 더 아플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한 실수를 되짚어보고 재구성해서 같은 상황에 도달했을 때,
같은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 농담이라고 했다. 상대방은. 대부분은 상대방의 기분을 완전히 잡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던진다. 만약 완전 내리깎을 것을 각오했다면, 차라리 ‘디스’라고 부를 것이다.
위트와 농담과 디스의 경계는 사실 정답이 없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가 그 경계를 결정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떤 상황적 맥락에서 누구를 향해 어떤 식으로 뱉아졌냐는 것이다.
만약 과거 조선시대 각설이들이 탈춤을 추면서 하는 말들을 양반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거나
중세 왕정시대 광대들이 하는 희극을 왕들이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아마도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최소한 ‘죽지는’ 않았다. 어쨌든 상황적 맥락에서 즐거운 파티나, 잔칫날이나, 연희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웃자고 만든 자리니까. 내가 주인이고 왕이고, 주최자라면, 메인 게스트라면, 내가 개그프로 방청객으로 우연히 1번줄에 앉았다면, 시덥잖은 농담 한마디 정도는 아량으로 봐줄 수 있을 정도의 배포는 보여줘야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과 그럭저럭 어울릴 수 있다. (중요한건 그럭저럭이다. 어차피 파티장에서 만나는
사람이 모두 내 친구는 아닌 이상에)
하지만 농담을 들은 당사자가 진심으로 ‘정색’하는 순간.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진다. 분위기가 복구가 안 된다. 윌 스미스의 부인이 그날 시상식장에서 한 표정은 그런 ‘정색’이었다. 윌 스미스는 부인의 표정이 무엇인지 즉각 알아차렸다. (그는 적어도 센스 없는 남편은 아니었던 듯. 집에 가서 생길 일을 미리 예측했으니) 그러나 이런 빠른 캐치는 사회자에 대한 공격이라는 돌발 상황으로 이어졌다. 폭력으로 즉각적인 되갚음. 차라리 누군가 시상대에서 넘어지는 상황이나 코미디였으면 좋았을 것을. 바보가 되는 것 보다 더한 파티의 악당이 되버린 셈.
만약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분위기정색 빌런으로 낙인이 찍힌다면, (아마도 시간이 좀 흘러야겠지만) 한동안은 어떤 모임에도 초대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사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벌어진 것 자체보다 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떻게 이루어졌어야 옳았겠냐는 ‘되짚음’ 이다. 만약 사회자가 농담을 한 직후에, 당사자의 표정을 알아차렸다면?
그가 빈 말이라도 , ‘Sorry”라고 했다면? 농담을 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다. 하지만 그 농담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예측하지 못했다면, 즉각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이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대방에 대한 가족이나, 신체 외모에 대한 내용이 섞여있다면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미 저질러졌다면 차라리 공개석상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윌스미스였다고 해도 잘 몰랐을 판에 다른이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어쨌든 명성은 없지만 괜찮은 남편/ 부인의 자세는 다음과 같다. 만약 상대의 기분이 나쁜 것을 감지하면 차라리 처음부터 남편/부인에게 직접 “괜찮냐?”라고 물어보는게 더 났다. 남편/부인이 여러 차례 물어봤는데도 기분이 나쁘다거나, 나가고 싶다거나 하면 그에 따라 맞춰주는 것이 부부의 역할이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이후에 주변인에게 그런 전후 사정들을 이야기 했더라면, 아마도 동정여론은 받았을 지도 모른다.
가족에 대한 보호는 분명 명분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보호의 방법은 생각해 봐야 한다. 앞에 나가 한대 쳐주는 것이 보호인가. 아니면 스스로 가족을 감싸주는 것이 보호인가.
부부로서 생판 모르는 코미디언이 비웃을지라도 세상에 하나뿐인 부인/남편이 자신을 위로해주는 편이 더 났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은가.
만약 내 남편이나 아이가 낯 모르는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했을 때를 가정해보면 좀더 쉽다. 1차 보호는 우리 남편이나 아이다. 그리고 난 후 말로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가급적 감정을 빼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직접적인 보복을 금지하는 법의 테두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