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언제부터 나쁜 남자였나?
-빌런 탐구 생활 : 겨울왕국 한스 편
주변 분위기가 이렇게 다운되어있으니, 좀 가벼운 이야기를 풀어보자.
우리 딸 덕분에 지금까지 100번은 본 영화가 디즈니의 겨울왕국인데
사실 그렇게 많이 봤음에도, 왠지 질리지 않는 건 그만큼 잘 만들어졌기 때문.
하지만 계속 보다 보니 드는 의문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사진의 요남자인데.
캐보면 뭔가 나올 것 같지만, 딱히 나오는 정보는 별로 없군.
그는 후반에 나오는 배신과 반전의 인물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궁금한 건. 그가 돌아서는 시점.
자네는 언제부터 나쁜 남자였나?
안나와의 첫 만남을 기억해보자. 엘사의 대관식 날 한 없이 들떠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뛰어다니는 안나. 안나는 노래 중에 왕자님도 만나게 될까? 이런 말을 하는데,
성 밖을 돌아다니던 중 진짜로 딱 그 타임에 한스 왕자와 딱 헤딩하듯 만나게 된다.
왕자와 만날 수 있을까 했는데, 진짜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온 그 남자.
20년 가까이 궁안에서 외롭게 살다가 딱 하루 나왔는데, 그날 만난 키 크고 그럴싸해 보이는 남자.
안나는 그 순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그는 자신을 한스 왕자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은 서던 제도에서 왔다고 소개하는데
Southern Island 즉 남쪽 섬들에서 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렌델이 북쪽의 추운 곳이라면,
한스는 남쪽의 따뜻한 곳. (뉘앙스만 보면 영국이나 유럽이 제국주의로 식민지를 만들던 시절
일종의 제독 같은 그런 느낌인데) 10명인가 암튼 많은 형들 중에 제일 막내로 지내다가
엘사의 대관식에 참석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첫 만남을 관찰해보면, 안나를 공주로 알고 만난 건 아니었던 것 같고. 그 역시도 그렇게 계획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는 안나를 매너로 대할 뿐 의도가 보이지는 않는데..
그는 안나의 우스워보이는 모습에도 능숙한 태도로 응대한다.
다만 다시 보니 너무 웃긴 건 안나가 헤어지면서
"하지만 운이 좋은 거예요. 나정도인 게.."라고 말하는 장면
한스는 "나정도?"라고 다시 묻는데.
안나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이 말은 결말에 나오는 한스의 배신에 대한 위트 있는 복선이기도 하고.
반대로 해석하면 나를 만났으니 당신은 복 받은 거야. 이런 말로도 해석할 수도 있는데
한스는 후자로 해석한 것 같다. 말 그대로
나에게 행운이 주어졌구나 이런 표정.
또 마지막에는 안나가 한스를 죽빵으로 날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과도 매칭이 된다.
처음에 실수로 물(사랑. 곤경 기타 등등)에 빠졌지만, 결국 본색을 알고 나서는 빅 펀칭으로 되갚아 주는 공주님.
사랑은 열린 문?
두 번째 만남. 파티 중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안 그래도 엘사 때문에 속상했던 때인데 왕자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쁜 안나. 그를 만나 정원에서 춤을 추면서 부르는 노래가 유명한
Love is an open door.
만난 지 24시간이 안된 그들. 안나는 너무나 나가고 싶고. 갈 데가 없었던 한스는 너무나 이 성이 들어오고 싶고. 둘의 욕구가 맞아떨어져서 그들은 푹 빠져 버리는데. 안나가 평생 문 뒤에서 만 살았다고 하자. 한스는 평생을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맸다고 한다. 작은 파티나 초콜릿 퐁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그전까지는 작은 물에서 놀았지) 이제는 내 자리를 찾았다고 말한다. 안나 네가 너무 좋아라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이 자리가 너무 좋아.라는
뉘앙스가 풍기는데. 약간의 조짐이 보이긴 한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결혼해주겠냐고 던져보는데 안나가 이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생각해보면 이 둘이 말하는 Crazy도 좀 웃긴다. 처음에 안나가 미친 것 같은 소리 하나 해도 될까요? 이러는데 한스가 나도 미친 것 좋아해요. 이렇게 대답하는 말에도 약간의 복선. 물론 서로의 의도가 너무나 달랐다는 게 뒤에 가서 밝혀지긴 하지만 말이다.
이 Crazy 표현은 겨울왕국 2에도 한번 더 재활용되는데,
크리스토프가 마차를 타고 가면서 청혼을 하려고, 말을 버벅거리자.
안나가 화를 내면서 "내가 미친것 같아요?"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앞선 노래에 대한 일종의 비틀기.
즉 안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그 남자와 노래에 대한 일종의 뒤끝으로 보면 될 듯. 디즈니는
깨알 같은 것들을 잘도 숨겨놓았네.
그 중간에도 한스는 안 나와 엘사가 싸운 뒤 안나가 급하게 떠나버리자,(하루 만에 결혼하겠다는 발언으로 엘사의 분노를 끌어냄) 처음에는 말리다가 막 잡지는 않고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두는데. 안나는
언니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급하게 떠났다만. 한스에게 기회를 준 꼴이 되었다. 한스가
할 일은 안나와 엘사가 공식적으로 왕위를 버리고 갔다는 걸 확인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느긋하고 차분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비상물품을 지급하는 등 왕국을 돌보는 듬직한 대리인 역할까지도 무난하게 해낸다. 자신은 안나의 대리인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결정적인 장면은 안나가 돌아오지 않고, 말만 돌아오자 그들을 찾으러 떠나는 그의 모습이다.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 한스.
그는 안나를 찾으러 간다기보다 엘사를 생포하러 떠나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엘사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시점은 안나가 엘사로부터
얼음궁전에서 타격을 입고 밖으로 쫓겨난 후였다. 안 나와 한스의 동선은 엇갈리는데 만약 그들이
오고 가는 길에 만났다면 또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크리스토프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쓰지 않은 것 같다)
엘사를 처음부터 죽이지 않으려 했던 건, 사실 엘사가 자신의 마법을 쓴 것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그는 엘사를 감옥에 가둔 후에 겨울을 멈춰달라고 요구하는데, 엘사가 "못해요"라고 소리치면서 괴로워하자, 그는 사용가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지 얼굴색이 싹 변하면서 급격하게 태도가 변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스는 안나의 생사 여부를 몰랐다.) 그러면서 그냥 문을 닫고 가는데. 그는 자매의 분란이 곧 자기에게 왕위를 줄 거라는 것을 은근히 반가우면서도, 엘사로 인해 겨울이 끝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실망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고 보면 그는 원조 빌런이라기보다는 상황 따라 입장을 바꾸는 '편의형'에 가깝다.
(그 이유는 사실 엘사가 중후반까지 악역의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엘사에 가려져 안 보이게 하는 건 사실 전략적이다. 마지막에 가서야 진짜 악인이 가려지도록)
사람을 '잘' 못봤어
안나는 심장이 얼어 거의 죽을 지경이 다되어 성으로 돌아오는데, 한스의 키스 받아 진정한 사랑으로 다시 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한스와 만난다.
이 시점에 한스는 본색을 드러내는데, 그의 계획은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그는 처음부터 결혼을 목적으로 왔었고, 처음에는 여왕인 엘사와의 결혼을 목표로 하다가 안나로 대상을 바꿨으며 사고를 가장해서 엘사를 죽이고, 안나와의 결혼으로 왕위를 이어받을 계획이었다고
엘사가 혼자서 사고를 치고 안나는 그녀를 따라갈 만큼 어리석었다고, 이제는 자신은 엘사만 죽여서
여름을 되돌리면 된다고. 안나를 추운 방에 버려두고 떠난다.
이때 안나가 너는 언니의 상대가 안돼 라고하자
네가 엘사의 상대가 안돼지 라고 대답한다
(이용하려던 상대가 가치가 안되니 손절)
그리고 밖에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안나가 죽었으며, 자신의 언니로 인한 것이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사실 상상만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유리하게 일이 진행되자, 너무 쉽게 왕위를 가질 생각에 위선적인 태도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로 한스의 시각에서는 엘사가 떠났을 때 안나 입장에서 그냥 두면 되지 않았겠냐는 건데. 결국 안나가 엘사를 따라가지 않아도 결국은 자신이 이 나라를 지배했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한 것. 이 남자 참. 안나를 많이도 무시했지.
끝까지 자매간 싸움이 서로를 죽인거라고
결론을 내린다
엘사에게는 네가 안나를 죽였다고 하고
안나에게는 언니가 널 죽인거라고
자기는 정의의 사도라고 착각
그리고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 즉 한스가 엘사를 죽이러 가고 안나가 그걸 막으러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엘사는 안나를 찾고, 한스는 엘사를 찾고, 안나는 크리스토프를 찾는다.(크리스토프를 찾는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고. 이것은 곧 자신의 목숨을 살린다는 뜻도 된다. 혹은 크리스토프가 한스와 싸워주길 바라는 걸 수도 있다)
위에서 보면 4각형인데 각 모서리에 한스 엘사 안나 크리스토프가 서있고, 가까워지기 위해 애쓴다. 보통 극에서 인물 간 3각 구도를 많이 쓰는데 4각 구도라는 것이 신선하고 극적인 효과를 높였다고 생각했다.
엘사와 한스가 가까워질수록 죽음에 가까워지고.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가까워질수록 사랑이 가까워진다. 이는 고전적인 극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제작자는 그 구도를 한방에 깨버린다. 한스와 엘사가 가까워지는 순간 안나가 엘사를 행해 대각선으로 돌진한다. 안나는 언니를 살리고 자신은 얼음 동상이 되어버린다. 이는 사랑이 남녀 간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그전의 디즈니 공주들의 스토리를 깨는 것과 동시에 , 진정한 사랑은 새로운 관계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또한 중요한 건. 안나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누군가를 대신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에 이어지는 디즈니가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진정한 환상.
눈물을 통해 죽은 사람이 환상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이어진다. 안나의 죽음까지가 비극의 한 시퀀스였다면 안나의 부활과 다시 돌아온 봄은 이 영화가 진정한 동화로서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스는 안나에 의해 한방 맞고 감옥에 가면서 영화는 마무리되고. 대관식에서 한몫 보려는 일당들도 결국 쫓겨난다.
만약에 햄릿과 같은 고전 극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지금껏 썼던 인물 간의 내적 갈등이 구구절절이 말로 풀어져있을 것이고, 사람들은 독백이나 방백을 통해 한스의 속마음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영화 속에서는 한스같은 악역의 마음을 장면을 통해 짐작을 해볼 뿐. 결론이 나기까지는 아무도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거. 그는 안나와 엘사에 비해 주변부 인물이지만 꽤 중요한 인물이었고. 잔머리 빌런의 역사를 남기게 되었다.
안나와 결혼했다면 종일 먹고 놀았을 그를
생각하니 늦게라도 안나가 사람보는 눈을
갖게된걸 다행으로 여긴다
결국 끝에 가서 푸대접을 받고 이어지는 후속 편에서도 계속해서 푸대접. 짧은 출연작에서도
마구간에서 똥을 푸면서 고생하는 그. 2편에서는 얼음동상으로 5초 정도밖에 출연을 못했으니, 어설픈 그로서도 서운했을만하다. 만약 3편이 되어 그가 나온다면, 어딘가에서 또다시 빌붙어 업그레이드된 악당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빌런이 없으면 영화가 무슨 맛인가..
맨 뒤의 아저씨 미니언즈의 악당인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