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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May 23. 2022

집을 구합니다. 물건창고 말고요..

-내가 사는 집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법

한정된 자원 속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까


시간, 공간, 인력, 돈, 물질은 한정적이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5가지의 조합일 텐데 집을 짓든 장사를 하든 필수적인 것은 잘 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을 교육이라고 부르자. 자본주의 사회는 한정된 시간과 인력을 돈이라는 수치로 아주 잘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성취에도 비용을 계산하지만, 자연재해로 무너진 것을 복구하고 극단적으로는 사람이나 동물의 건강을 다시 살리는 비용을 계산한다. 만약에 복구 비용이 없다면 무너진 건물이든 개인의 무너진 건강이든 어떤 식으로 회복할지 난감해진다. 도덕적으로는 모든 것에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지만 자원이 한정적이라면 가치를 선별하는 수밖에 없어진다.   

#코로나 시대는 이런 현실적인 가치를 잘 알려주었다. 의료자원과 인력이 풍부한 국가에서는 코로나에 걸려도 치료받고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도 개인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생업전선에 나가야 하고, 병원에서는 부족한 자원으로 환자를 돌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살리고 그렇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마음과 달리) 매우 현실적인 자원 부족 문제 속에서 선택해야 할 가치다.


메마른 보도블럭사이에서도 꽃은 피더라..

나쁜 사람은 부족한 사람인가

사람이 여유가 없어서 냉정해지는 것은, 생존에 에너지를 써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원이 부족한게 첫번째 이유. 생각보다 본능을 강하다. 이것은 사회갈등을 불러온다. 두번째로는 그것을 문제 해결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과의 심리적 격차가 생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개선할 의지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했지만 현실 속에서는 더럽고 고통스럽고 누군가와 부딪혀야 하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의지'라는 것은 부족하고 인심이 말라버린 사회 속에서 결코 아름다운 꿈만을 주는 천사 같은 존재가 아니다. 어차피 사회가 정의롭지도 않고 개인의 생존이 우선시 되는 곳이라면 '의지'란 현실을 뚫고 나가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최소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아름답지는 않아도 정해진 현실을 깨고 부수고 나올 필요는 있는 것.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돈과 체력, 도덕성과 '구성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좋은 음식과 교육비용을 대야 하고 생활공간이 편리해야 하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해줄 체력과 기술, 대화의 스킬이 필요하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휴식과 보강까지 있어야 한다.  아이 위주로 사는 이상 있는 것을 다 털어주는 상태에서 나는 항상 적자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까지 나의 상태였다. 매일매일 겨우 적자를 면하는 상태. 그리하여 좋은 엄마도 못되었지만 나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자신을 털어야 하는 그런 상태. 아이를 낳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의 무언가가 항상 있다. 아이 등교한 후 친구를 만나고 여가시간을 갖고 취미활동을 하고 직업을 가질 수 없다면, 지금의 시간과 공간 비용구조를 변경하고 뜯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떠난 후에도 내 삶은 파산하지 않고 계속 유지될 것이다. (모든 육아가 다 끝난 시점에서 너때문에 내 인생 다 썼다라고 하는 부모는 되지 않도록)


집을 삽니다. 평당 계산가에 못미치는 물건창고 집 말고요..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만의 방'을 처음으로 이야기했던 페미니스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인 나는 그 당위성이 아니라 현실적 방법을 연구한다. 좁은 집과 부족한 시간과 비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여유를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연구한다. 일터와 출퇴근 거리를 계산한 집의 평수와 가격 그리고 거기에 대비한 수익. 거기에 덧붙여 살림을 줄이고 수납을 배워서 부족한 공간을 늘리는 방법까지. (아파트 가격이 평수에 따라 몇억씩 차이가 나는 현실 속에서 이 비싼 공간을 물건을 쌓아놓는 창고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방 3개짜리 집에서 4개로 바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젠 너무 잘 안다. 심지어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방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물건을 위한 공간에서 사람을 위한 집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정사각형 방에 삶을 집어넣는다면 그게 집이겠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어떻게 사는가를 바꾸기도.

나는 깨달았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한다고 잔소리를 하기 이전에 내가 아이와 공부상에 마주 앉아 같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가를. 공부책상을 사준다고 공부한다는 것이 거짓말인것 처럼. 거실에 책장이 있다고 책을 읽는게 아닌 것 처럼. 공부하는 공간이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시간을 늘려 학원을 보낸다고 아이가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서 부모가 아이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시간을 잘 쓰고 자기 관리를 잘하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엄마와 아빠다. 엄마와 아빠가 시간을 잘 써서 여유롭게 남은 시간이 있어야 아이와 편안하게 마주 앉아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동안 진심 어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인생의 목적과 수단이 잘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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