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o am I Jun 20. 2022

공간의 안과 밖

내 좌표는 어디일까

꿈의 안과 밖


지난밤에는 집에 관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 나오는 집은 현실의 집이 아니다. 초현실 세계 속에서 집은 너무나 오래된 나무로 만든 판자 집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 집은 그냥 낡은 집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사시던 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집에 다시 찾아갔던 것. 그래서 집을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안에는 부서져가는 낡은 가구들이 가구들과 스펀지밖에 없는 이불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낡은 집에는 단 하나 깨끗하게 수리된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화장실이었다. 파란 타일로 되어있는 그 공간은 신기하게도 안이 넓어 보였고 심지어 TV까지 설치되어있었다. 나는 이 낡은 집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화장실을 리모델링했을까

저 TV는 왜 저기 있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낡은 집과 새 공간 속에서 나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공간은 사실 나의 내부에 대한 상징인지도

모르겠다. 새것과 낡은 것이 뒤섞인.


1984. 작품 속 공간

오웰의 작품인 <1984년>에는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와 줄리아가 밀회하는 공간이 나온다. 윈스턴이 사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개인 공간이라는 곳이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사적인 장소에는 CCTV가 달려있고,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있다. 집이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다. 텔레스크린을 끌 수도 CCTV를 피할 수도 없다.

숨 막히는 사회 속에서 윈스턴은 처음으로 비밀연애를 시작하고, 새로운 정치조직에 가입하게 되는데 그는 스스로의 비밀 아지트를 찾아내기 위해 낡은 장식품 가게 2층을 빌린다. 그리고 그곳에서 줄리아와 만날 계획을 세운다. 그 비밀 공간은 낡은 더블 침대가 하나 있었고 오래되어 먼지와 빈대까지도 많다. 하지만 윈스턴은 그 장소에 있으면 처음으로 '인생은 살만하다'라고 느낀다. 처음으로 설탕과 커피 초콜릿까지도 맛보게 되는 곳. 줄리아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되는 곳. 그러나 그 방에 있었던 한 개의 액자. 오래된 종탑을 그린 그림. 그 그림으로 인해 그들은 파탄을 맞이한다. 감시사회에서는 벽에 붙어있는 액자 뒤에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이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빅브라더의 지배를 풍자한 정치소설로 평가하지만 나는 다른 식으로 본다.  정치 체제에 대비하면 한없이 작은 '개인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작가의 진지한 물음이 이 책에는 섬세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훌륭한 작가란 단지 뚜렷한 주제의식을 그려내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보지 못한 미세한 감각에 대해서도 잘 다루는 사람이기에, 작가의 감각적 표현들은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나는 윈스턴이 처음 가게에서 샀던 '크림색 노트' 그리고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산호가 들어가 있는 문진. 그리고 덥고 좁은 가게 2층 방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산호문진속 세상은 윈스턴이 있고 싶었던 진공의 공간이다

윈스턴은 이상하게도 자기가 겪었던 일이 과거에 꼭 있었던 일 같다고. 자기가 꿈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되뇐다.

알고 보면 그의 기억조차 조작된 것일까? 빅브라더는 마치 그물이라도 놓듯 끌려들어 오는 윈스턴을 그곳에서 쉽사리 잡아들인다. 40년이나 되었다는데 여전히 크림 색인 노트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적극적으로 자기에게 다가와서 사랑한다고 말했던 줄리아라는 여자는? 생각보다 너무나 쉽게 그녀와 비밀공간을 갖고 사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된 이유는? 감옥에 갇혀있는 윈스턴은 결국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다. 내가 생각하는 것. 믿는 이 세상이 진짜일까?  심지어 감옥에서 60대 여인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윈스턴은 그 여인이 자신의 엄마인가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상관이 없다. 그를 마지막으로 '개인'은 완전히 사라졌으니.  윈스턴이 사라지고

나서도 가게의 빈 방은 오랫동안 주인을

기억할 것이다


공간에 들어가면 느끼는 것들

집이란 단지 시멘트와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곳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간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무의식적으로 가늠한다

아이들은 좁고 낮은 공간에 기어들어간다

그곳에선 상대적으로 자신이 크게 느껴져

안전하다고 느낀다 너무 넓은 공간은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주기 때문


나선형의 계단에 있는 사람이

위에서 바라보면  3.14.. 의 공통의 파이값을

가지는 원들이 저 밑바닥까지 반복되어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맨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맨 밑의 사람들이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깔때기의 맨 아래 같은 곳으로 자신도 내려가는 모습을 본다. 영화의

추격전에서 곧잘 써먹는 것도 이유가 있다. 다시 말해 건축은 공간을 조각하는 것이니까.

3차원 그래프에 찍힌 한 사람은 좌우 상하의 입체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다

3월 14일 파이데이 포스터


 3차원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는 동물들


한 마리의 곤충은 사람에 비하면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이지만  세계는 입체적이다.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공기의 흐름으로 공간을 파악한다. 3차원 공간을 날아다니는 곤충의 동선은 예측할 수 없다. 사람은 앞뒤 좌우 한 방향으로 움직일 뿐 뒤를 보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아주 잠깐 뛰는 것을 뺀다면 지상에서 발을 뗄 수도 없다. 지금은

드론이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지만.

곤충처럼 작은 개체가 공간을 누비는 그 능력에 지능을 탑재한다면 사람보다 훨씬 유리한 전략적 위치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현실에선 그렇지 못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좌표를 갖고 논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이 인형 대신 마인크래프트 피규어를 갖고 노는 것을

본다.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세상들.

좌표 속에 표시되는 블록들의 세상은

코딩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익숙한 것.


엄마가 처음으로 기초 코딩이란 것을 배워

보여주니 첫째가 웃고 난리가 났다.

그나마 2차원은 봐줄 만 한데 3차원에선

거북이가 화면 밖으로 뻗어나가 버렸기

때문. 그래도 아이들은 굳이 명령어를

써야 한다는 것을 어려워했다

손가락만 대면 뭐든 움직이는 게 익숙하니까.


그래도 덕분에 새로운 세계를 배울 수

있었으니 고맙다고. 그렇게 위안을

삼을 수밖에


커버사진 출처 :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집을 구합니다. 물건창고 말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